세줄 映

82년생 김지영 - 김도영

마루안 2019. 12. 11. 22:36

 

 

 

영화 보는 내내 공감이 새록새록 솟는다. 눈물, 콧물, 울분, 그리고 내 어릴 적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막내인 내 생일과 당신 제삿날이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사진 보고 저 사람이 내 아버지였나보다 한다.

 

어머니는 다섯 자식을 홀로 키웠다. 실제는 일곱을 낳았단다. 하나는 돌 무렵 잃었고 하나는 일곱 살 무렵에 잃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죽었다는 말 대신 날렸다고 말했다.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어머니는 내 허리를 묶어 강아지처럼 문고리에 묶어 놓고 일을 나가야 했다.

 

누나 말에 의하면 학교에서 돌아오면 울다 지쳐 마루에서 자고 있는 내 얼굴에는 까만 파리떼가 잔뜩 붙어 있었다고 한다. 파리가 내 코와 입술에서 앉아 있기만 했을까. 나는 파리 알을 비타민 대신 먹고 자랐다. 그 영양제 덕분일까.

 

학교 다니면서 늘 1, 2등을 다퉜고 3등 아래 성적은 없었다. 울며 떼쓰는 아이를 묶어 문고리에 걸어야 했던 어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줄이 길면 마루 아래로 떨어질 수 있으니 짧아야 했다. 지금 같으면 아동 학대에 해당된다. 

 

어머니는 일 마치고 와서 우물에서 물 길어와 아궁이에 불 때서 밥을 했고 겨울이면 냇가에서 고무장갑도 없이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방망이로 두들겨서 빨래를 했다. 일부러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살았다. 아니, 살아 남아야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공감을 하면서도 왜 잊고 있던 옛 생각이 떠올랐을까. 맞다. 내가 너무 편하게 살고 있구나. 험한 세상을 살아낸 선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내가 복에 겨워서 너무 우는 소리를 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생전의 어머니는 이런 경우를 호강요강하는 소리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여성인 김도영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훨씬 공감을 많이 하는 작품일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것이 능력있는 여성들만의 제약은 아니다.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들 또한 더했으면 더했지 녹록하지가 않다. 가령 마트 계산원이라면 어떤 풍경이 벌어질까. 아파트 장만은 꿈도 못꾸고 해마다 오르는 전세금 마련을 위해서 맞벌이는 어쩔 수 없다. 내 어릴 때처럼 문고리에 아이를 묶어 놓고 출근하는 엄마가 있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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