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검은 항로 - 전윤호

마루안 2019. 12. 28. 19:07



검은 항로 - 전윤호



이 땅의 모든 도시는 항구가 있지

사람이 비린내 풍기는 바닥에

묶인 배 흔들리는 부두가 숨어있지


깊은 수심에 몸을 던져보지 않으면 몰라

때론 살기 위해

내일을 죽이기도 하는 법


머리 위로 오가는 뭍의 것들이

함부로 침 뱉는 발아래

끈적한 파도 출렁이는 선착장이 있다네


출항 시간도 모르고

배표도 못 구한 대기자들이

밤마다 불행을 섞는 곳


짐이라곤 후회 한 보따리

손 흔들어줄 사람 하나 없으니

우리 뱃고동 울릴 때까지

서로의 항로를 위해 한잔하지



*시집, 아침에 쓰는 시, 도서출판 역락








대합실 - 전윤호



돌이켜 생각해보니

평생 헤어진 일이 없다

떠났다 생각해도

팔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는 언제 만났을까

서로에게 없던 시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 별이 꿈이 아니라면

함께 불시착했을 터

이제 구조 신호 은하를 건너

빈 배 하나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멀미약이나 챙기며

서로 바라보고

멋쩍게 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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