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환장할 단풍이여 - 김남권

마루안 2019. 11. 15. 19:09

 

 

환장할 단풍이여 - 김남권


여름 내내 땅의 수액을 빨아들여
속속들이 푸르러졌다
실핏줄 하나 세포 하나까지
지울 수 없는 연민으로 채우고
시리도록 푸른 물결을 무르팍 위로
팽개쳐 놓았다


절대로 물들지 않을 것 같은
나무에 시월이 오고
온몸에 36.5도의 화상을 입은 이파리들이
붉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다


바람난 남자의 그것인가
염병할 산자락만 보면
그냥 엎어지는 자존심,
살과 살이 불붙을 때를 기억하는

전두엽 속에서
피보다 진한 그리움 꺼내어
결국 난 환장하고 말 것이다


*시집, 빨간 우체통이 너인 까닭은, 오감도

 

 

 

 

 

 

가을 아침에 - 김남권

 


가을 닮은 너를 사랑한다
강물 속에 드리워진 하늘이, 물살을 간질이는
눈웃음으로 송사리 떼의 재잘거리는

미소를 볼 수 있는 아침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별빛의
청청한 바람 속에서
평생을 기다려 온 너를 보았다
남루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분주한 발걸음도 땅을 밟지 않았다
계절을 불러온 기적소리가
시골 간이역 건널목이라야 할 너를 향해
손짓하며, 강물아 바람아
하늘아 소리쳐 부르면

숨죽여 울음 우는 눈물방울을 쏟아내고야 말

저 푸르디푸른

저 붉디붉은 득음의 순간

혼절하고 마는

바람의 병목구간에 서서

천 년을 이어온, 첫 바람을

왈칵, 품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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