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通

창극 - 패왕별희

마루안 2019. 11. 11. 19:40

 

 

지난 봄 국립극장에서 놓친 공연이다. 봄이면 들로 산으로 바람 난 숫캐마냥 돌아댕기느라 이 좋은 공연을 보지 못했다.  재공연을 해서 용케 볼 수 있었다. 예술의전당도 간만에 가니 좋았다. 천상 이런 곳은 공연 있을 때나 갈 수 있는 장소다. 남산 자락에 숨어 있는 국립극장 또한 마찬가지다.

 

패왕별희는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로 유명하다. 나 또한 그 영화를 보고 장국영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3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줄 모를 정도로 장국영의 연기는 소름이 돋았다. 내용은 잘 알려진 대로 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비극적 이별이다.

 

어릴 적에 나는 지독한 개구쟁이였다. 어머니가 심부름이나 뭐를 시키면 예보다는 싫어 아니면 안해였다. 그때 어머니가 했던 말이 있다. 저 놈의 새끼는 항우 장사도 못 해봐였다. 그 항우가 패왕별희의 주인공인 줄은 훗날 초한지를 읽고 알았다.

 

창극과 경극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고전극이다. 연출은 대만의 경극 배우이자 연출가인 우싱궈(吳興國)가 맡았다. 창극보다 더 독특한 경극을 창극으로 보니 나름 참신하다. 초나라 항우가 한나라 유방에 쫓기다 사면초가에 처하고 그 마지막 연회에서 우희는 자결을 한다. 

 

경극에는 여배우가 나올 수 없기에 우희 역을 소리꾼 김준수가 맡았다. 항우 역은 젊은 소리꾼 정보권이다. 경극 특유의 화려한 분장과 조명 탓일까. 우희가 마치 우즈베키스탄 여자처럼 보였다. 장국영 만큼은 아니어도 괜찮은 연기였다. 영화와 달리 한 번 지나면 다시 볼 수 없는 모처럼 좋은 공연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