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通

순수의 시대 - 문진우 사진전

마루안 2019. 9. 16. 22:28

 

 

북촌에 괜찮은 사진 갤러리가 하나 있다. 작년에 개관했는데 실험적인 사진가들을 많이 소개했다. 전통 방식의 흑백사진을 좋아하기에 몇 번 갔다가 금방 시들해졌다. 전시를 볼 목적이 아닌 그냥 북촌을 산책 삼아 걷다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였다.

 

이번 전시는 내 마음을 제대로 잡아 흔들었다. 내가 추종하는 최민식 사진을 본 듯 오래된 풍경이 화석처럼 박혀 있는 오리지널 흑백이 반가웠다. 게으른 사람이라 전시 후기도 가물에 콩나듯 올리나 이번 전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사진가 문진우는 1959년 생으로 주로 부산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사진집 <비정도시>를 보고 작가를 알았다. 나름 부지런히 사진 전시를 보러 다녔지만 이 사람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긴 서울보다 주로 부산에서 전시를 해서 그럴 것이다.

 

문진우는 잘 알려진 사진가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달동네를 비롯해 부산의 변방과 오래된 골목,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풍경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전시도 그 묵묵한 실천의 결실이다. 특별한 기법이나 장식 없이 그저 흑백 화면에 담긴 오래된 풍경이 마음을 움직인다.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는 사진 앞에서 무슨 말을 더 보태랴. 부산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번의 여행에서 부산에 대한 추억은 새털처럼 많다. 오직 새것 만이 대접 받는 요즘 오래 된 것이 좋은 것임을 알려주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