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빨랫줄 - 이순호

마루안 2019. 11. 1. 19:52



빨랫줄 - 이순호



집을 짓고 나서야 알았다
광복절 국기를 매다는 것보다
빨래를 매다는 일이 소중하다는 걸
아들의 무릎 상처와 딸의 볼펜 자국 고민이
아내의 구멍 난 속옷과 삶의 고단함이
오늘 빨랫줄에 널려 서로의 먼지를 덜어내고
툭툭 털어내 개키는 동안 가벼워진다는 걸
어제의 무게로 날마다 낮아지는 빨랫줄을
오롯이 떠받칠 바지랑대도 필요하다는 걸


집을 짓고 나서야 알았다
빨랫줄 걸어야 비로소 집이란 걸



*시집 <낡은 상자 헌 못>, 글상걸상








똥 누는 법 - 이순호



해적질에 道 튼 동무 하나가 내게 가르쳐 준 바닷가에서 똥 누는 법, 우선 땡볕에 잘 달구어진 미끈한 돌을 골라 너럭바위 그늘 잔물결 돌아나가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차가운 바닷물이 똥구멍을 스물스물 간질일 정도로 주저앉아 힘껏 내갈긴 다음, 그 뜨끈한 돌로 스윽 똥구멍을 닦으면 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뜨거운 돌을 사용하면 어느 놈처럼 똥구멍을 데인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바다 저 멀리 돌을 던지는 일이다. 그 돌을 찾아 자맥질하면 분명 논쟁이라도 한 마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순호 시인은 1970년 제주 출생으로 1995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 시집은 가내수공 독립출판사 글상걸상의 대표인 이순호 시인이 직접 손으로 엮은 것이다. 첫 시집이다. 현재 제주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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