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홍매 - 김상백
피를 마셔야지
미치도록 가려운 자리
한 방울로도
그저 감사한 밤
통통하게 살이 올라
가을 달은 더욱 밝아오고
버러지 목숨으로
철사 같은 뿌리 내리면
붉은 매화
꽃눈 틔울 때마다
뜨뜻한 피 눈물처럼
벽을 타고 흐르네
불타는 낙엽으로도
태울 수 없는 홍매여
왼팔을 자르니
꽃비 쏟아지는구나
죽어서 피어나는
모든 꽃들아
어떤 살육(殺戮) 딪고
향기 진하게 흥건할 건가
*시집, 한 줄로 된 깨달음, 도서출판 운주사
세월 - 김상백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내가 없으면
# 여름이 늦장을 부리다 물러 가는가 싶더니 어느덧 가을도 온전히 자리를 잡았다. 얼마나 내려가야 깊어 가는 가을이라고 할까. 하이쿠를 연상 시키는 짧은 시가 긴 여운을 남긴다. 때론 정제된 싯구가 더 많은 걸 내포하기도 한다. 아직 가을은 이만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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