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달빛을 깨물다 - 이원규 시집

마루안 2019. 10. 27. 19:32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을까. 이원규 시인이 한꺼번에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사진전과 함께 낸 시집도 좋지만 이 시집을 선택한다. 두 권 다 좋은 시집이어서 후기를 남기고 싶으나 나는 늘 하나라도 덜어내는데 익숙하다.

언제부터 그의 시를 읽었을까. 내 살아온 날들이 늘 한 박자씩 늦었기에 아마 10년 안짝이었는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떠도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내가 마음만 있지 떠남을 실행하지 못하기에 이것도 대리 만족 일종일 것이다.

전에 읽었던 그의 산문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떠돌면서도 그는 늘 돌아올 곳이 있었다. 이 시집 곳곳에 젊을 적부터 현재까지 바람처럼, 때론 호랑이 잡는 포수처럼 전국을 떠돌았음을 알 수 있다. 시집에는 오래 전에 발표한 시를 다시 불러온 것도 있지만 처음 읽는 느낌이다.

그의 초기시를 보면 지독할 정도로 반항적이었다. 호감이 가면서도 다소 부담스런 시도 있었다.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는 무모함에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젠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시인의 기질이 어디 가겠는가. 빳빳한 중심은 여전하다.

많은 시인들이 무슨 공식처럼 방랑벽이 있고 애초의 그 기질로 시인이 됐을 것이다. 이따금 거대 담론과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별 공감 없이 뜬구름처럼 흩어지는 시들을 만나면 막막하다. 내가 시인들의 사상이 담긴 고상한 문학성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기에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원규 시는 떠도는 방랑이 아니라 돌아옴의 방랑, 흩어진 구름처럼 사라지는 방랑이 아닌 돌아와 뿌리 내린 결실의 방랑이었다. 시를 음미하면서 읽다 보면 빨간 물이 든 그의 발자국에 어느덧 내 마음이 차분히 가 닿는다. 일종의 중독이다.

그는 투박함과 섬세함을 함께 가진 시인이다. 덜어낼수록 꽉 차는 시, 내 맘대로의 정의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이 가고자 했던 방향이 늘 어긋났음을 느낀다.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 시인은 가슴에 맺힌 것이 많다.

"당신 나를 잘못 읽었어"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읽었으니까. 떠돌던 시인이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부터 거칠었던 감정이 많이 정화 되었다. 서정성 짙은 시가 많은 것도 그 이유다. 

이 시집은 그 동안의 시심을 정리하는 1차 결산 보고서다. 도입부터 마무리까지 제목만 훑어도 그의 발자취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평론가 홍용희의 해설이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데 길잡이가 된다.

그의 해설을 읽고 시를 다시 읽으니 시인의 의도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모든 시를 다 내것으로 만들 수는 없겠으나 이 책이 그의 시집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시집이라 생각한다. 놓치기 아까운 좋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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