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연필로 쓰기 - 김훈

마루안 2019. 9. 11. 22:05

 

 

 

잘 팔리는 책은 가능한 사지 않는다. 그러나 서점에 진열된 책을 들추다가 몇 군데 문장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김훈의 책은 빠짐 없이 읽는 편인데 심금을 울리는 황홀한 문장에 반해서 굳이 독서 후기까지 쓰게 된다. 그의 글이 만드는 자발적 글쓰기다.

내가 산 것은 발간 2주 만에 벌써 3쇄다. 작가든 시인이든 나이 먹으면 약력에서 슬쩍 나이가 빠지는 경우가 많다. 늙은 것 자랑할 일 있냐고 할지 모르나 자신이 쓴 글에 당당하면 굳이 나이를 숨길 필요는 없다. 김훈은 글 곳곳에서 나이를 당당하게 밝힌다.

그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풍경과 상처>였다. 1990년대 중반 유홍준으로 인해 문화유산 답사가 유행이었다. 그때 함께 답사를 하던 선배 하나가 뒤풀이 자리에서 이 책을 언급하며 추천했다. 그때 받은 느낌은 그의 글이 현란해서 황홀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나의 가슴을 녹였던 소설도 좋지만 나는 <자전거 여행>에서 김훈의 진수를 보았다. 그때 나는 그이 글을 읽을 때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구나였다. 현란한 글을 썼던 작가도 나이를 먹으면서 현란함이 많이 줄어 들었다.

대신 담백함이 자리를 잡았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담백함이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작가는 70을 넘긴 지금도 호기심이 세 살 아이 저리 가라다. 아마도 그의 글에 사실성이 살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좋은 시를 썼던 시인이 환갑 넘기면서 매가리 없는 시를 쓰는 사람이 많은데 김훈 작가의 글은 여전히 울림이 있다. 글 써서 부자 된 사람이 그냥 된 게 아님을 보여 준다. 그의 책이 나오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고정 독자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밥과 똥>, <태극기>가 인상적이서 이 대목은 무릎과 맞장구를 치면서 두 번 읽었다. <늙기와 죽기>, <해마다 해가 간다>도 그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진솔한 글이다. 지혜든 연륜이든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아, 100원>이라는 장에서 비오는 날 오토바이 배달원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쓴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호 대기 중이던 오토바이를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오토바이 청년을 들이 받는 사고다. 쓰러진 청년 옆으로 배달통에 들어있던 음식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장면을 김훈은 목격하고 이런 문장을 남긴다.

<나는 먹고 사는 일의 무서움에 떨었다. 나는 삶 앞에서 까불지 말고 경건해져야 한다고 결심했다. 가장 적은 것들만 소비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도 사는 것에 대해 전율했고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