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너에게서 비롯된 말 - 이응준

마루안 2019. 10. 7. 22:25



너에게서 비롯된 말 - 이응준



별과 구름과 바람의 일은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지켜보는 일.
그물에 갇혀 버린 한 마리 물고기에게
황혼이야, 그렇게 속삭이는 것은
바다와 바다의 일.
잊고 싶지만, 어제 길에서 마주 걸어오던 그 노인의 얼굴에는
소년의 명성이 그림자처럼 서여 있었지. 아직도 내게
어머니는 흰 바탕에 빨간 줄무늬 구급차.
그때 그랬어야 했다고 멍하니 생각하는 동안
별과 구름과 바람은
모두 너에게서 비롯된 말.
우리가 서로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게 된 것도
혼자 있기 위해 기도하는 법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아무 의미 없는 물고기 한 마리와 함께
황혼이 그물에 갇혀 버린 나의 어둠도 알고 보면 모두
들리지 않는 너의 목소리.
어떤 죽음도 사랑 없인 슬프지 않아서,
아직도 나는 거리에서 소리 지르는 구급차를 보면
이 흰 바탕 빨간 줄무늬 세상에는 있지도 않은 어머니가 떠오른다.
주여, 얼마나 삶이 괴로우면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고 했을까?
저녁에 마음이 아픈 것이야 이미 아이들이 천년 동안 부르고 있는 노래.
신의 명성은 인간의 비극 속에 서려 있으니
밤과 낮이 모두 너에게서 비롯된 말인 것처럼.
별과 구름과 바람의 일은
사람과 사람의 이별을 슬퍼하는 일



*시집,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민음사








나를 뒤흔든 사흘 - 이응준



의혹이 신념과도 같은 밤.
어둠 속에서 안도하는 영혼은 다 나의 형제이니
괴로워라, 과거는 전부 지문(地文)으로 처리되고
사랑은 분명히 독백보다 슬픈 것,
막중한 사흘
티끌 같은 인생
고래 배 속 그 밑바닥에 귀를 대고 기도하는 광야여.
바다의 모래 폭풍을 듣는 일은
눈을 감으면 보이는 사막이 이별하는 인간들의 것이 아니라
전갈과
낙타의 것임을 아는 일,


그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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