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명절날, 형제를 잃다 - 박현수

마루안 2019. 9. 23. 19:06



명절날, 형제를 잃다 - 박현수



이번 한가위에도 형제들이 싸웠다
막내는 이번에도 오지 않았다
동네 호프집 구석 자리에 몇 차례 술이 돌자
서운함은 아무 말이나 불러들였다
무슨 개소리야 엄마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게
셋째 형이 둘째 형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화장실까지 따라가서
둘째 형이 셋째 형의 멱살을 흔들었다
큰형이 둘째 형을 달래는 사이
나는 셋째 형에게
먼저 욕한 것은 아무래도 잘못이라 나무랐다
나와 가장 친하다고 믿는
셋째 형의 얼굴엔 서운한 빛이 역력했다
둘째 형과 셋째 형이 화해하는 사이
큰형은, 나와 막내도 말 한 마디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싸움을 시작하였노라고 상기시켰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정체 속에
내 앞에서만 끼어드는 차들을 속수무책으로 보기만 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기위만 같지 않으면 성공이라 생각해본다
매번 사면이 반복되는, 형제라는 긴 형벌을 생각해본다


상처를 덧나게만 하는 어설픈 화해를 하고
이번 명절에도 나는 형제를 모두 잃고 내려왔다



*시집, 겨울 강가에서 예언서를 태우다, 도서출판 울력








1만 5천 마리의 하루살이 - 박현수



오늘도
하루살이의 전 생애를 탕진했다
오늘 저녁
어디선가 나 대신 하루살이가 죽어 가리라
목숨이란 게
그의 전 생애를 덧대고 기운 것일 뿐
나의 한 달은
서른 마리 하루살이의 전 생애
일 년은 삼백예순 하루살이의 전 생애
마흔이 넘은 나는
1만 5천 하루살이 목숨의
어설픈 짜깁기라서
어느 하루도
그의 전 생애와 맞바꿀 만한 날은 없다
하루의 모든 권력은
하루살이로부터 비롯한 것이니
아침이 쉽게 왔다고 말하지 않겠다






# 공감이 가는 시다. 전형적인 콩가루 집안이었기에 쓴웃음과 씁쓸함이 묻어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큰형과 막내는 상극이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한 배에 나온 자식 같지가 않단다. 아버지를 빼다 박은 큰형과 엄마를 꼭 닮은 나다. 명절이나 제삿날에 큰형과 내가 함께 있을 때면 어머니는 안절부절이었다. 하루살이 인생을 때닫게 될 때쯤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