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세상 밖으로 우수수 - 김사이

마루안 2019. 8. 22. 19:28



세상 밖으로 우수수 - 김사이



수천 높이 기암절벽을 기고 오르내리는
히말라야 지붕 아래 고산지대 사람들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손님처럼
주어진 밥에 경배하며 돌아간다는데


종일 홀로 떠 있는 건설현장 크레인 기사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며
수행하듯 오르내리다 고행이 된 지 이십여년
다치거나 죽어도 산재보험은 꿈도 못 꾸지


저 아래 사람살이 한줌 먼지 같아


사람과 사람 안에 있어도 외롭고 두려운 법
새벽같이 하늘로 출근했다가
붉은 노을이 어둠속으로 잡아먹힐 때
그제야 누구의 무엇의 이름 속으로 들어간다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는 어디쯤인지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창비








공포 영화 - 김사이



홀로 삼년째 복직투쟁하는 해고자는
작업복만 봐도 일하고 싶다
가축으로 일하든 기계로 일하든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밥줄인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꾹꾹
한줄기 빛으로 기대하지만
기약이 없다


목숨 끊는 소식들
듣고 싶지 않아도 보고 싶지 않아도
두려움으로 온다
절망으로 온다
하루하루 비틀거리면서 어둠은 내려앉고
나는 위태로운 내 밥그릇 슬그머니 움켜쥔다


나를 잠글까 광장으로 튈까
대응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시간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일지 알려주는 예고편들
핏빛보다 더 붉은 일상들


단역들이여 비극으로 끝날 한편의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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