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그 행복한 시도 - 김요아킴
천국행 열차를 타기위해, 천천히
지하로 안내하는 계단에 올랐어요
만지면 한줌 재로 바수어질 듯한 영혼을 매달고
차갑게 들여다뵈는 대리석 바닥을 서둘러 피해갔지요
낯설게 틀어박히는 역사의 멘트는
한층 발걸음을 부양시키며 무임승차를 재촉하네요
간간히 스치는 사람들의 통화음
한 그릇의 저녁밥과 살 부비는 온기를 생각나게 하네요
문득, 강렬하게 저당 잡힌 삶을 어딘가 하소연하고 싶지만
어젯밤 피워놓은 번개탄 냄새가 서둘러 말리고 있어요
이제 어둠을 저며 가는 불빛이 덜컹거리며 달려오고
몸을 성큼 앞으로 내어주면 저의 완벽한 시도는 끝이 나네요
단호한 그 호각음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제복들이
달려들어, 제 행복이 도난당하지만 않으면 말이지요
*시집, 행복한 목욕탕, 신생출판사
국밥 한 그릇 - 김요아킴
꼭 삼백 예순 날 전
부엉이 바위가 지켜보는 어두운 논길을 지나
서러움으로 촘촘히 박음질한 천막 아래로
때 이른 국화꽃이 새하얗게 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장대비가 죽창처럼 먹먹한 가슴으로 꽂히던 날
희뿌연 화로의 그 향내가
팔십 년대 광장에서 터져오는 최루가스보다, 더 맵게
눈을 아려오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맨정신으로 있기엔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날
허기진 뱃속으로 쏟아 부은 한 잔의 취기와
쪼그려 앉아 후후 나의 비겁을 불어대며
한 그릇의 국밥을 손에 든 적이 있었습니다
숟다락으로 휘이 휘이 저어가며
당신이 뿌려놓은 한 톨 한 톨의 밥알과
당신이 쌓아놓은 건더기 힌 점 한 점을
입천장 데일 정도의 아픔으로 삼킨 적이 있었습니다
영상으로만 들을 수밖에 없는 걸쭉한 목소리를 등 뒤로
마지막 대접을 받고 일어서던 자리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당신의 정의와 원칙 앞에
두 종아리와 손목이 가늘게 떨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크고 작은 그림자들 차곡차곡 포개어져
가늠할 수 없는 긴 행렬로, 한 발 한 발
어떤 가시밭 길이라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야 마는
그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이었습니다
그날의 국밥 한 그릇, 결코 잊어지지가 않습니다
# 해마다 오월이 되면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리움을 삼키며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내년에도 오월은 올 것이다.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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