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13코스는 용수 포구에서 출발해 바닷길 없이 저지오름까지 순전히 육지 안쪽으로만 걷는 길이다. 5시간 정도 소요된다는데 일정상 10분의 1쯤의 길은 같은 날 걸어야 했다. 12코스를 내쳐 걷고 나니 오후 3시다. 용수 포구에서 30분 이상 머물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13코스 일부를 조금 걷기로 했다. 용수리는 여러 전설을 간직한 작은 마을인데 일정에 여유가 있어 쉬엄 쉬엄 둘러보기로 했다.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천주교 성지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천주교에 호의적이다. 내가 아는 신자들은 타종교를 배려할 줄 알고 드세지 않아서 좋다. 성당에 작은 모임이 있는지 몇 분이 모여 있었다. 봉지 커피 한 잔을 권하기에 아주 달게 마셨다.
올레길을 살짝 벗어나 용수리 마을 길을 걸었다. 잔뜩 흐린 날씨에서 빗방울이 비치기 시작하나 걷기에는 문제 없다.
용수리는 아주 평화로운 마을이다. 골목길을 걷는 동안 구멍가게 주인 빼고는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용수리를 벗어나니 들길이 시작된다. 어찌된 것일까. 여러 곳에 양배추가 버려져 있다. 판로 때문인가 가격 때문인가. 아깝다.
내가 좋아하는 찔레꽃이 지천이다. 찔레꽃을 보면 왜 슬플까.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전부가 중국인이다. 대화 소리 듣고 안다.
용수리 버스 정류소다. 어제까지 서귀포였던 숙소가 오늘부터 제주 시내다. 20분 간격으로 있는 202번 버스가 올레길 오가는 며칠 동안 출퇴근을 도왔다. 제주 올레길은 대중 교통이 잘 갖춰 있어서 좋았다. 10분쯤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다음날 용수리 버스 정류장에 내려 본격적인 13코스를 걷는다. 용수 저수지 방향 들길이 평화롭기 그지 없다.
걷는 길 곳곳에서 찔레꽃들이 수줍게 피어 반긴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장사익의 찔레꽃을 잠시 흥얼거린다.
용수 저수지 둑방길에 앉아 캔커피를 마신다. 찔레꽃 향기가 지천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찔레꽃 향기에 취할 정도였다.
한동안 들길을 걷다 보면 특전사 숲길이 나온다. 올레길을 만들 때 제주에 주둔하던 특전사들이 만든 길이라고 한다.
특전사 숲길을 지나면 평화로운 들길마다 찔레꽃이 한창이다. 찔레꽃을 만날 때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향기를 맡았다.
아홉굿 의자마을 낙천리다. 올레길은 낙천리를 S자 형식으로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 또한 조용한 마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들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종점이 가까워 온다. 올레객을 위한 긴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했다.
저지오름으로 가는 길에 거대한 공동묘지 군락이 나온다. 오래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들꽃으로 덮인 무덤도 보인다.
저지오름에 올랐다. 오래 머물렀다. 분화구로 내려가 보았다. 천혜의 원시 식물군이 늦봄의 햇빛 속에서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드디어 13코스 종점 저지리다. 집집마다 있는 귤나무에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어릴 때 본 탱자꽃과 비슷하게 생겼다.
제주 산중 마을 저지리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고요함에 잠긴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밥풀처럼 매달린 하얀 귤꽃은 왜 이리 지천으로 피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지,, 봄날 열흘의 벚꽃도 아름답지만 귤꽃도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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