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느 하루 - 윤석산

마루안 2019. 4. 5. 19:59

 


어느 하루 - 尹錫山

 

 

하루 종일 전화가 두 번 울렸다.
한 번은 잘못 온 것이고
다른 한 번은 돈을 꾸어주겠다는 전화였다.


세상의 그 많은 전화번호 중에
어떻게 이 번호가 선택되어 잘못 돌려진 것일까.
무작위로 다이얼을 돌리면서 돈을 대출해주겠다는
전화라도 이렇게 이르니
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담보가 아닌가
잠시 착각을 했다.


먹통이 다 된 귀, 그래도 조금은 호사 아닌
호사를 한 오늘
살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서글픈 날이었다.

 


*윤석산 시집, 절개지, 도훈출판사

 

 

 

 

 

 

노숙, 몽유의 - 윤석산

 


아직 다 비우지 못한 소주
그 나머지, 반병만큼의 생
잠든 그의 곁
위태롭게 서 있다.


세상이 모두 자신의 것인,
버려질 유산이 전 재산인
그.
아직 버리지 못한 세상 속 웅크린 채
잠들어 있다.


단 한 번도 허여되지 않은
하늘. 향해 입 벌리고

소주병 하나.


오늘 기상은 흐리고, 때로는
눈비 내릴 것이나
그러나 세상
오늘도 평화로울 것이다.

 

 

 

 

# 尹錫山 시인은 1947년 서울 출생으로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다 속의 램프>, <온달의 꿈>, <처용의 노래>, <용담 가는 길>, <적>, <밥 나이, 잠 나이>, <나는 지금 운전 중>, <절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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