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닷가의 이민들 - 손월언

마루안 2019. 4. 5. 19:39

 

 

바닷가의 이민들 - 손월언

 

 

날품 없는 이민의 하루는 허무하다

이국의 말, 길들, 사람들 속에서

마음은 종잡히지 않고

몸들만 볕바른 곳을 찾았다

 

그러나 의미로 가득 찬 조국은 슬픈 것

조국이란 전쟁중이거나

굶주림중이거나 둘 중에 하나지

 

늙수그레한 구렛나룻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디로부터 흘러왔는지

막혀서 돌아왔는지

하루를 잘 견디는지

그래도 이야기는 쓸쓸한 꽃으로 핀다

 

낯선 땅에

증명도 없이

둘이 먼저 일어났지만

바람 불고

날은 저무니

몸마저도 갈 곳이 마땅찮다

 

저만치 떨어진 벤치 앞에서 서성이는데

나는 묻지도 못했지

식구들은 어디 있어요

식구들은.....

 

 

*시집.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 문학동네

 

 

 

 

 

 

고향 바다 - 손월언


세상 사람들이 아직은 옷감에 물들이지 못한 파란색 바다
세상 사람들이 아직은 보석으로 얻지 못한 여름 바다 파란 크리스털
어떤 미장이의 손끝에서도 마감된 적이 없는 새하얀 갈매기 배
오래 묵은 육지의 골목길만큼이나 정겨운 잔 섬들 사이의 바닷길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꿈결의 시간들은 있었다
꿈결에 실려 몽돌밭에, 축항에, 나룻배 위에 있었고
바다를 보기 위해 산에 올랐다
이토록 멀리, 긴 꼬리를 끌고 날아온 여름 밤하늘의 유성이 되어,
기억도 추억도 향수도 아닌
세상 사람들이 아직은 말하지 않은 감정을 두 손에 받쳐 들고
나는 모든 것을 잊는다

 

 

 

# 손월언 시인은 1962년 전남 여수 출생으로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9년 <심상>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늘도 길에서 날이 저물었다>, <주머니를 비우다>가 있다. 1994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현재 파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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