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폭설의 한계중량 - 이종형

마루안 2019. 1. 16. 19:47



폭설의 한계중량 - 이종형



항구로 가는 길목
과적검문소 앞에 밀감을 가득 실은 5톤 트럭 한 대
부르르 떨며 붙들려 있다
대설주의보에 닫혔던 바다 다시 열린 날
공일처럼 허비한 이틀의 몫을 조금이라도 벌충하려
얼어붙은 길을 뚫고 달려온 항구를 지척에 두고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이 정도의 중량 초과도 못 봐주는 거냐는 사내의
분통이 폭설의 오후를 빗금 치며 도려내고 있다


한 장의 쪽지로 며칠의 노동이 차압당하는
세상은 여전히 허기지고
길은 쉽게 제 몸을 열어주려 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의 한계중량은 도무지 어느 만큼일까


오늘 같은 날은 좀 봐줘라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 없다면
한 번쯤 눈감아 줘라


하늘에서 쏟아진 눈의 무게만으로도
지상은 이미 중량 초과다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삶창








정선 - 이종형



길은 멀기도 해서
몇 굽이의 산허리를 휘감고 돌았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어
살짝 멀미가 나는 몸을 잠깐 부려놓은 버스정류장에서
담배 연기로 시장기를 달래며
천리나 된다는 말이 마침내 체감되던


거기서 만난 사내들은 모두 우직하기가 태백산 줄기 같아
말은 통하되, 속내는 곰곰 되새겨봐야 하는
이국의 풍경은 펼쳐지는데
오일장터에서 만난 누이들은 모두
싱겁지도 짜지도 않은 수수부꾸미 같은
슴슴한 웃음을 흘리는지


그곳에도 막다른 길은 있어
끝내 돌아설 발걸음 생각하면
산짐승도 잠을 설쳤을 그 밤
아라리요가 왜 동강보다 유장하게 흘렀는지 겨우 알 것만 같은


여기가 내가 몰랐던 세상의 끝일지라도
하룻밤쯤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아도 좋을
첩첩산중 깊은 골짜기에서
긴 그림자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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