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동굴 - 함순례
엄마의 입안엔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동굴이 있다
어느 날 수저질 느슨한 엄마
고기를 씹지 못하신다
고름 뿌리로 남은 이, 하나 둘 셋,
빛도 바람도 없이 습기만 눅눅한
십수 년 불 들이지 않은 검은 아궁이
그 깊은 자궁을 들여다본다
청상 시절 중심이 흔들릴 때 있었다
털어놓으시던 엄마
차암 의젓한 이였는데, 차마 니들을 두고 갈 수 없어서....
풀이 자랄 수 없는 동굴
허나 칠남매는 엄마의 살을 뜯어먹고 자란
육식동물이었으니
내일 당장 죽더라도 오늘 맛나게 드시고 가시요!
나의 완력에 썩은 뿌리 뽑아낸 엄마
비로소 곤한 잠에 드신다
내가 발견한 동굴은 고작 세 개뿐
몸 어딘가 숨겨놓은 동굴이 또 있는지 나는 모른다
*시집, 뜨거운 발, 애지
열반 - 함순례
밑동 잘린 그루터기
누르스름한 단면을 쓰다듬다가
가슴 맞대고 돌아나간 쌍나이테를 보았다
폭설과 장마에 그만 중동이 부러진 느티나무
갈래갈래 가지가 벋어나가고
푸르르 날개를 펴는 이파리들 사이로 새들이 날아들고
물끄러미, 수백년, 낮과 밤이 흐르고
아침마다 그의 둥치에
불면의 밤을 퉁퉁 쳐대는 짐승들이 흘려놓은 하품 같은 거
돌이끼 피고 닳고 닳은 옹이의 틈새에서
층층이 쌓아 올린 두 개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아, 여기에 탑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
뛰어올랐다, 불심은 불의 심장에 닿는 일이듯
허공을 뚫고 느티나무를 뚫은
저 기나긴 묵언
지상에 풀어낼 일이 많은지
느티나무 몸돌은 천천히 궁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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