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서산에 해는 지고 - 이생진

마루안 2019. 1. 15. 22:06



서산에 해는 지고 - 이생진



서산에 해는 지고
나처럼 갈 데가 없어 지는 해
가지 말라고 날 붙잡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 길을 동행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유혹에 약한 내가 먼저 쓰러진다
해가 지더니 해가 내 옆에 쓰러지고
달이 오르더니 달도 내 옆에 쓰러진다
아무도 일으켜 세우는 이가 없어서
쓰러진 채로 밤을 새웠다
자고 일어나니
따라오던 사람이 없다
그럴 줄 알았다
어디서 또 만날지
그건 전혀 모른다
그렇게 가고 있다



*이생진 시집, 무연고, 작가정신








노인들끼리 - 이생진



노인들은 점점 기우뚱거리니까
서로 의지하려 한다
옆에 앉은 내게 사탕 하나 주며 몇 살이냐 묻는다
89요 했더니
자긴 77이라며
3년 후엔 자기도 80이라며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부러워하는 것인지
어쩐지 말이 없다
늙어가는 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만
걸어가다가 쓰러질 확률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 1929년에 출생하셨으니 올해 딱 90세가 된 이생진 시인의 시집이다. <무연고>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황금찬 시인이 99세에 타계하신 후 92세인 김남조 시인과 함께 최고령 현역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시집이 38 번째 시집이라니 왕성한 시작 활동이다. 아직도 정정하시니 다음 시집을 기다려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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