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을 완성하는 뒤처리 방식 - 정선

마루안 2019. 1. 11. 22:47



사랑을 완성하는 뒤처리 방식 - 정선



사막의 밤에 눈이 내렸다
눈을 받으려고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바로 지금이야
무작정 절규는 그녀에게 정글로 가자고 했다
선인장은 가시 대신 꿀을 달고
사자는 꽃잎을 먹는다고 했다
그녀는 망막을 꿰뚫는 절규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절규는 온도를 잃어 손이 차가웠다
절규가 잃지 않은 건 밀림의 후손이라는 징표,눈썹이었다
그의 야성은 검은 눈동자에도 남아 있었다
회색먼지로 뒤덮인 눈동자는 처지고
눈썹만이 야성을 지니려 안간힘을 썼다
사막에서는 절규도 그녀도 사생아였다
불타기 좋은 곳은 사라지기 좋은 곳
떠다니기 좋은 곳, 바누아투로 갈까
늘 망설이다 아침이면
등갈기 위로 떨어지는 햇살을 착실하게 받았다
사막에서 그녀가 잃어버린 건 유방이었다
굶주린 바람조차 그녀의 젖을 빨았던 건기는 길고 길었다
젖이 말라버린 유방은 거추장스러울 뿐
절규는 짙푸른 눈썹 위에 앉은 눈을 털어내고 털어내고
가자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
한 웅큼의 물기와 한 잎의 눈썹만 있으면 돼
절규가 채근했을 때 눈동자 속 정글이 꿈틀거렸다
야성, 그 순도 높은 아나콘다의 냉기
피에서는 늪 냄새가 났다
절규와 그녀의 몸이 점점 뜨거워졌다
온 몸에 푸른 비늘이 돋았다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 천년의시작








노을에 투신하다 - 정선



억새잎에 마음 베여 본 사람은 바다로 간다
찬바람이 코를 에이는 그곳에서 알게 된다
비릿한 파도 소리도 마음 한 곳에 쟁여지면 풍경 울린다는 것을
가슴 북북 찢어 되새 떼 울음으로 그림 한 폭 그린다는 것을


바다는 먼데서부터 자지러진다
발톱을 곧추세우고 용틀임 하는 바다
나는 함부로 풍경들을 베어 먹었다
자주 체했고 두드러기가 빨갛게 돋았다
바람이여
이지러지는 해를 잘근잘근 씹어라
발바닥이 뜨겁다
짓밟은 고통에게 말한다
너덜해진 내 치마폭에 맘껏 놀다 가시라고
치마폭에 노을이 들끓는다
혀를 데이자
저 시퍼렇게 멍든 환희






# 정선 시인은 전남 함평 출생으로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6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가 첫 시집이다. 시인의 본명은 정경희, 알려지지 않은 시 잘 쓰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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