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은하수역, 저쪽 - 황학주

마루안 2019. 1. 10. 21:58



은하수역, 저쪽 - 황학주



정거장 대합실 파닥이며
되새가 들어왔다


산간에 눈이 내려
달빛이 산마루를 덧칠하며 원 없이 넘어올 때
탈탈 털고 대합실에 들어서는 사내가 발을 전다
오래 절룩거려온 나이는 먼 데 있는 정거장까지 알아볼 것이다
주위에 목마름이 심한 별들이 많다는 것은
그 증거이다


별 발자국이 눈밭에도 찍혀 있다
발자국의 뿌리는 사내의 키만큼 깊을 것이고
별의 뿌리는 별보다 더 먼 곳에서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눈밭을 절며 걸어온 발로
걷기 전의 성한 데를 건드려보는 것이다 반짝반짝,


하늘은 가지에 목이 걸린 홍매(紅梅)를 밤새 살리고 있었나보다
숨소리 돌아오며, 안색 밝아지는
산마루 앞 칸으로 옮겨 타려다 멈칫거리는 앳된 별


사내가 대합실 우윳빛 유리에 비치는 발자국을 지켜보고 있다
되새가 머리를 박으며 대합실을 빠져나간다
아무래도 되새는 부력이 좋은 봄기차로 가려는 것 같다


새벽밥 먹은 별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자
빈자리마다 덴 자국이 있었다



*시집, 노랑꼬리 연, 서정시학








자작나무 날개 - 황학주



너무 그리울 때는 자작나무가 있기도 없기도 했다
하루는 암꽃이 하루는 수꽃이 수줍음을 타는 그 자리
낮달이 슬쩍슬쩍 자작나무 슬하로 들어왔다
이렇게 하얀 무릎을 모으고 서서 원하는 것은 생의 고저이겠는지 속도이겠는지
너무 이쁘게 보일 때는 말도 못하지만
내, 낮달 스미고 일요일 오고 신작로 깔리는 자작나무 4월이 오면
사랑을 해야지 대신할 수도 대표할 수도 없이
자작나무가 서 있는 일곱 번째 봄
우리는 할 얘기가 많아 껍질박이 흠에 들어가
삼십 년은 더 살아야지
날개였던 하얗게 튼 살을 꼬집으며 사라져가야지
그렇게 여기면 까불거리며 울어지기도 했다
4월 산문(山門)에 둘이서 얇게 벗겨지는 것이 깊었다
다른 나무들도 아뜩하게 날개가 없었다고 사랑을 추억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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