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백 년 향기 - 육근상

마루안 2019. 1. 11. 21:57

 

 

백 년 향기 - 육근상


목에 호스를 심은 식물이 왔네
금방 떨어질 것 같은 한 꽃송이 달고
뽀글거리며 침대째 내게 왔네

숨 한 번 쉴 적마다 식물은
가는 허리로 발목으로 동그란 눈으로
갸릉갸릉, 흰 나비 부르고
상심한 남자는
굵은 손으로 눈물 찍어내며
꽃자리 지키느라 안간힘이었네

겨우내 떨어져 살며 꽃 피우고
새 화분으로 옮겨갈 막다른 허공 잡다
댓바람에 목 꺾인 몸부림은
얼마나 힘든 외로움이었나

시든 꽃에도 향기는 있네
백 년 식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향기네


*시집, 만개, 솔출판사

 

 

 

 

 

煞* - 육근상


스무날이었던가
버러지소리로 들어와
방문 걸어 잠근 날
가을비 내렸던가
한 소절씩 끊어 말리며
두근거리는 심장 가라앉힐 때
차가운 바람은
볼온한 나를 어디로 인도하였던가
餘恨이라는 말 있었던가
살아있으니 그저 눈 떠지는 초이레
잘그랑거리며 온기 불어넣는
처마 끝 풍경소리 들으며
나는 어느 가난한 영혼 놓아주었던 것인데
가을은 스무날 지워버렸던가
빗소리 그으며 지나가 버렸던가


*煞살: 사람이나 생물, 물건 등을 헤치는 모진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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