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브라더미싱 - 문동만

마루안 2019. 1. 10. 21:41



브라더미싱 - 문동만



늙은 부부가 한 몸으로 사는 일을
바짓단 줄이는 일을 구경하였다
서로 퉁바리도 주며 손길을 모아 사이좋게
내 다리를 줄여주는 일을


여자는 실밥을 풀고 남자는 박으며
풀며 박으며 이으며 다리며 가는
황혼의 동사를 구경하였다


등 뒤에 카세트를 틀어놓고
배경음악의 주연으로서 늙어가는 일을


저이의 한때가 등뼈 마디마디에
음각과 양각으로서
살 없는 활로서
시위를 버티는 삶의 탄성을
늘 등을 굽히는 노동을
제 몸을 표적으로 박는 노동을


저이들의 솔기를 다시 뜯어
다시 옷을 짓는다면
어떤 누에가 되어 푸른 실을 쏟을까


브라더미싱,
부부가 형제가 되도록
늙는 일이여
달팽이처럼 느려터진 밥벌이여


삼천 원 받는 바짓단 줄이기가
이십 분 만에 끝났다


나는 공손히 줄어든 몸을 받았다



*시집, 구르는 잠, 반걸음








첫사랑 - 문동만



그녀는 돌을 깼고 나는 돌을 던졌다 종로1가에서
연무는 자욱했고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에
아직 잡은 적 없는 그 손을 찾아 안간힘으로
눈을 치켜뜨고 달렸다
털어도 털어도 가시지 않는 시절의 냄새를 품고
전철을 타면 모두들 눈을 부볐다
사람들은 공평히 눈물을 흘려줬다
이십 년 뒤 나는 그녀에게 돌 같은 말을 먼저 던졌고
그 돌보다 큰 돌이 건너편에서 날아왔다
나로 인해 그녀도 단련되어 있었다
어떤 전략도 없는 단발적인 항거에
나는 바꾸고 싶은 핸드폰만 벽에 던졌다
이럴 땐 보도블럭을 깨던 그녀를 생각하면 좋다
석공처럼 돌을 깨던 아담한 저녁의 여인,
그것만 기억하면 좋다
마침내 그 손을 잡은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면
가끔 자폭하는 통신망이 있으면 좋다
권태로운 선로를 끊고 나는 맛없는 술을 마시며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곰곰이 아무 말 없이 각자 던진 돌을 생각하며
옛 사람과 통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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