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대는 오지 않고 - 김중식

마루안 2019. 1. 8. 19:08



그대는 오지 않고 - 김중식



졸아붙어 바닥을 태우는 냄비처럼
살 수는 없는 일,
먼 길이 두려운 게 아니다
잃어버릴 게 많아서다


체질까지 바뀌어
더운 날엔  땀 나고
올챙이배가 무덤 같아서
팔짱을 올려놓는 나른한 오후


2단 로켓이 점화되기 직전
허공에 부동자세로 떠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처럼
가면 가겠지만
대기권에 재진입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혁명이 아니면 사치였던 청춘
뱃가죽에 불붙도록 식솔과 기어온 생
돌아갈 곳 없어도 가고 싶은 데가 많아서
안 가본 데는 있어도 못 가본 덴 없었으나


독사 대가리 세워서 밀려오는 모래 쓰나미여,
바다는 또 어느 물 위에 떠 있는 것인가
듣도 보도 못 한 물결이 옛 기슭을 기어오르고
두 눈은 침침해지고 뵈는 건 없는데


온다는 보장 없이 떠나는 건 나의 몫
신마저 버린 땅은 없으므로 풀잎은 노래한다
온몸을 떨었어도 그대 오지 않았듯이
더듬어 돌아올 길이 멀어지는 게 두려울 뿐.



*시집, 울지도 못했다, 문학과지성








금연 포기 - 김중식



조개가 숯불 위에서
처녀 역사(力士) 장미란처럼
지붕을 들어 올리고 있다.
속을 끓이고 있었다는 거다.


에베레스트 가는 길 해발 5천5백 미터 베이스캠프
희미한 산소 속에서
잠든 턱이 조개구이처럼 쩍쩍 벌어지고 있다


입안이 끓고 있었다는 듯이,
숨 쉬는 게 풀무질이라는 듯이,


그래,끊은 일을 다시 끊어버리면 돼.
오랜만에 찾아오신 깨달음 하나
즉,피우는 것도 집착이지만 끊는 것도 집착!
뭔 삶을 그리 아메리칸 퀼트처럼 이어 붙이시나!


열 달 끊은 담배를 이어 피우면서
그래, 집 사는 일만 포기하면 돼.


시인도 둘만 모이면 아파트 이야기를 하는 세상에서
그래,침묵하면 돼


얼마나 잘 살겠다고 갱생씩이나 하나,
믿지 않으니 다시 태어나지는 않을 테고
좀더 놀자,발 질질 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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