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암(住智庵)은 있다 - 한영수
은비녀가 없다 백일 비손이 없다
밥 좀 주쇼, 문고리를 흔드는
빨치산의 낮은 목소리가 없다
윗도리가 벗겨진 시신이 없다
속바지 바느질 자국으로 알아본
뭉개진 얼굴이 없다
산딸기의 붉은 빛처럼
주지암은 숨어있나
소풍을 간 곳 초등학교 때
아버지도 양은도시락 허리에 차고 숨차 올랐다는
바래봉 깎아지른 바위 아래
그 무서운 사천왕도 없이 스님마저 어디 가고
바위부처 혼자 골짜기 마을을 품어준
주지암이 없다
표지석의 화살표를 따라 갔는데
삐비 한 줌처럼 봄 소풍 전날 밤의
뒤척임처럼 뒤척이다 엿들은
한숨처럼 희미해졌나
다가선 그만큼 멀어져갔나
흔들리는 촛불이 없다
떨어지는 촛농이 없다
왼손과 오른손을 모은 가슴이 없다
*시집, 꽃의 좌표, 현대시학
꽁초 - 한영수
오늘 낮도 지나왔다
무엇도 완성하지 않았다
낮이 모르는 것을 생각한다
벽을 기대 꽁초를 줍고
라이터를 켠다
빨갛게 한 점
집중하는 것이 있다
밤이 감춘 것들이 부풀어 오른다
벽처럼 조용하다
절벽처럼 불안하다
지원받은 라면은 소주로 바꿨다
오른손이 왼손을 때릴 때가 있다
바람은 몸 안에서 터진다
독거의 이마에서 헝겊 띠가 날린다
머리칼만 자랐다 수염만 자랐다
놀이하듯 손가락은 구부러지지만
뿔을 만드는 주먹이 그래서 둘
꽁초가 탄다 침몰의 정상에서
풀려나오는 것이 있다 희뭇이
지나가는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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