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주지암(住智庵)은 있다 - 한영수

마루안 2019. 1. 7. 22:10

 

 

주지암(住智庵)은 있다 - 한영수

 

 

은비녀가 없다 백일 비손이 없다

밥 좀 주쇼, 문고리를 흔드는

빨치산의 낮은 목소리가 없다

윗도리가 벗겨진 시신이 없다

속바지 바느질 자국으로 알아본

뭉개진 얼굴이 없다

산딸기의 붉은 빛처럼

 

주지암은 숨어있나

소풍을 간 곳 초등학교 때

아버지도 양은도시락 허리에 차고 숨차 올랐다는

바래봉 깎아지른 바위 아래

그 무서운 사천왕도 없이 스님마저 어디 가고

바위부처 혼자 골짜기 마을을 품어준

 

주지암이 없다

표지석의 화살표를 따라 갔는데

삐비 한 줌처럼 봄 소풍 전날 밤의

뒤척임처럼 뒤척이다 엿들은

한숨처럼 희미해졌나

다가선 그만큼 멀어져갔나

 

흔들리는 촛불이 없다

떨어지는 촛농이 없다

왼손과 오른손을 모은 가슴이 없다

 

 

*시집, 꽃의 좌표, 현대시학

 

 

 

 

 

 

꽁초 - 한영수

 

 

오늘 낮도 지나왔다

무엇도 완성하지 않았다

낮이 모르는 것을 생각한다

벽을 기대 꽁초를 줍고

라이터를 켠다

 

빨갛게 한 점

집중하는 것이 있다

밤이 감춘 것들이 부풀어 오른다

벽처럼 조용하다

절벽처럼 불안하다

 

지원받은 라면은 소주로 바꿨다

오른손이 왼손을 때릴 때가 있다

 

바람은 몸 안에서 터진다

독거의 이마에서 헝겊 띠가 날린다

머리칼만 자랐다 수염만 자랐다

놀이하듯 손가락은 구부러지지만

뿔을 만드는 주먹이 그래서 둘

 

꽁초가 탄다 침몰의 정상에서

풀려나오는 것이 있다 희뭇이

지나가는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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