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그 뻔한 것에 대해 - 차주일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서면
뒤돌아보는 시야만큼 공간이 생겨난다.
부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만큼 팽창하는 영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유배지.
외곽을 허물어놓고도 자신만 탈출하지 못하는
누구도 입장할 수 없는 성역(聖域)에
과거로 얼굴을 펼치고
미래로 표정을 그리는 사람은 쉬이 눈에 띄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내 마지막 표정이 생각나지 않아
내 얼굴에 무표정이 머문다.
무표정이 진심이라는 풍문이 떠돈다.
*시집,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포지션
도착하는 소실점 - 차주일
무화과 진 가지 끝은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이다.
투신은 흔적을 남겨 누군가에게 질문한다.
꽃을 보지 못하고 떠난 이 사람은
꽃이란 아주 먼 곳에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발로는 갈 수 없는 너머를 걷고 있는 사람이다.
망자의 눈이 된 고요가
무화과 진 자리에 발을 넣는 바람을 본다.
부러지기 직전까지 휘어졌다 되돌아오는 가지를 본다.
먼 산등선의 굴곡대로 휘어지는 가지는
바람을 어디에 부려놓고 되돌아오는가.
산등선이 헛걸음 딛는 이곳에서 시작되는 시선은,
시선이 넘을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마음은,
또 몇 생 너머에서 첫걸음을 투신하는가.
발과 눈동자를 거세한 고요 속에서 싹트는; 마음아
사람의 뒤태가 소실점이 되어 빨려들고 있다.
누군가 참 먼 곳에 도착하고 있다.
# 차주일 시인은 1961년 전북 무주 출생으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수학했다. 시집으로 <냄새의 소유권>이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 돈맛을 좀 아시나 - 박형권 (0) | 2018.12.31 |
---|---|
구례역 - 방민호 (0) | 2018.12.30 |
사라져 버린, 10시 - 김요아킴 (0) | 2018.12.30 |
우리, 같이 나눌 슬픔이 있는 동안에 - 박현수 (0) | 2018.12.30 |
무의미를 위해 복무하다 - 장시우 (0) | 2018.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