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나눌 슬픔이 있는 동안에 - 박현수
우리,
같이 나눌 슬픔이 있는 동안에
샛강 노을에
한 절음의 햇빛으로 뛰어오르던 피라미
그 빛나던 웃음들을 만져 보자
살아간다는 건
바람 속을 걷는 일
바람이 잔잔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익숙해지는 것
오래 걸을수록 폐에 해롭고
폐는
낡을수록 사색이 깊어지는 것
그리하여
황혼에 선 우리의 황금빛 머리칼이
아름다우리라는 건
우리는 예전부터 들어왔던 터
누군들
돌아선 뒷모습에서 눈물을 읽지 못하랴마는
오늘 마주선 얼굴에선
그 뽀얀 잇몸을
그 정겨운 눈웃음을 보여주지 않으랴
언젠가
툭 치고 지나간 그 어깨가
그리워지면
우리는 긴 회한의 편지를 쓰고 말리니
우리,
같이 나눌 슬픔이 있는 동안에
샛강 노을에
빛나던 웃음으로 뛰어오르던 피라미
그 찬란한 환호들을 이야기하자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청년정신
언젠가 이 시간을 달라고 하셨으므로 - 박현수
새벽에 서너 시쯤 눈을 뜨면
낯익은 시간
새벽의 추위를 어깨로 받치며
긴 한숨뿐인 옛날을
빨갛게 한 모금 당기시는 할머니가
어둠의 한 켜를
걷고 웅크리고 있다
할머니는 어떻게
일생으로 이 시간을 알아내셨을까
청솔가지 푸른 연기 속에 흘린
눈물의 절반을
나는 무엇이었던가 알 듯도 하다
그리하여
온기 얼마 남잖은 화로를 지키며
한 톨의 옛일이라도 뒤적이시는가
일어설 때마다
우두둑
관절음을 떨구시는 할머니
언젠가 쓸쓸한 모습으로 이 시간을
달라고 하셨으므로
한기도
제대로 털어내지 못한 채 내어드렸다
꽉 다문 입술을
들썩이다 돌아선 그 자리엔
콩나물 시루에
쏟아지던 물소리처럼 어깨를
적시는 한기
왜 할머니는 미친년 널 뛰듯이 살아왔다고 하셨을까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 그 뻔한 것에 대해 - 차주일 (0) | 2018.12.30 |
---|---|
사라져 버린, 10시 - 김요아킴 (0) | 2018.12.30 |
무의미를 위해 복무하다 - 장시우 (0) | 2018.12.29 |
달빛 하얀 가면 - 안현미 (0) | 2018.12.29 |
인연 - 이원규 (0) | 2018.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