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를 위해 복무하다 - 장시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비애는 육체를 잠식한다
무의미는 인생을 잠식한다
축복처럼 축복처럼 축복처럼
잠식하고 잠식하고 잠식한다
영혼의 집, 육체의 집, 인생의 집
집으로 가득 차 부어 오른
내 불쌍한 배를 들여다보면
보인다 집집마다 방방마다
눈먼 누에들의 스멀거림
갉고 뜯기고 삼키는
저 몰두하는 맹목의 입들
남아나는 것이 없다, 폐허의 생애
살 수가 없다 살 수가 없어
스스로 문 닫고, 못질하고 들어앉아
묘비에 기록하였으니
<생애의 원리금을 지급보증하라>
마지막까지 인생이 눈물겹더라
*시집, 중국산 우울가방, 하늘연못
미라 앞에서 묻는다 - 장시우
옷이라는 거 믿을 게 못 되네
투루판의 아스티나 옛 무덤 가서
무덤 속 누워 있는 미라 만나 보니
옷이라는 거 주인은 생각도 않고
지 먼저 썩어 버려
주인은 유리 관 속에 덜렁
자지 내놓고 누워 어쩔 줄 몰라 하네
죽었지만 부끄러움이야 어디 가랴
옻칠한 얼굴 붉어지지야 않았지만
그렇게 보이네
생각해 보면 몸이라는 거
영혼의 옷 아니던가
덜렁 자지 내놓고 누워
언젠가 주인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옻칠한 저 검은 몸뚱이
영혼이라는 거 있다면
저 옷 다시 입고 싶을까
믿을 수 없는 저 옷을
그래도 믿고 돌아오고 싶을까
삼천 년 전에
저 옷 벗어 두고 간
영혼은 어떻게 생겼을까
영혼은 옻칠 안 해도 안 썩을까
영혼에도 자지가 달렸을까 덜렁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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