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의미를 위해 복무하다 - 장시우

마루안 2018. 12. 29. 21:43

 

 

무의미를 위해 복무하다 - 장시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비애는 육체를 잠식한다

무의미는 인생을 잠식한다

 

축복처럼 축복처럼 축복처럼

잠식하고 잠식하고 잠식한다

 

영혼의 집, 육체의 집, 인생의 집

집으로 가득 차 부어 오른

내 불쌍한 배를 들여다보면

 

보인다 집집마다 방방마다

눈먼 누에들의 스멀거림

갉고 뜯기고 삼키는

저 몰두하는 맹목의 입들

 

남아나는 것이 없다, 폐허의 생애

살 수가 없다 살 수가 없어

 

스스로 문 닫고, 못질하고 들어앉아

묘비에 기록하였으니

<생애의 원리금을 지급보증하라>

마지막까지 인생이 눈물겹더라

 

 

*시집, 중국산 우울가방, 하늘연못

 

 

 

 

 

 

미라 앞에서 묻는다 - 장시우

 

 

옷이라는 거 믿을 게 못 되네

투루판의 아스티나 옛 무덤 가서

무덤 속 누워 있는 미라 만나 보니

옷이라는 거 주인은 생각도 않고

지 먼저 썩어 버려

주인은 유리 관 속에 덜렁

자지 내놓고 누워 어쩔 줄 몰라 하네

죽었지만 부끄러움이야 어디 가랴

옻칠한 얼굴 붉어지지야 않았지만

그렇게 보이네

 

생각해 보면 몸이라는 거

영혼의 옷 아니던가

덜렁 자지 내놓고 누워

언젠가 주인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옻칠한 저 검은 몸뚱이

영혼이라는 거 있다면

저 옷 다시 입고 싶을까

믿을 수 없는 저 옷을

그래도 믿고 돌아오고 싶을까

 

삼천 년 전에

저 옷 벗어 두고 간

영혼은 어떻게 생겼을까

영혼은 옻칠 안 해도 안 썩을까

영혼에도 자지가 달렸을까 덜렁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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