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연 - 이원규

마루안 2018. 12. 29. 21:23



인연 - 이원규



저기 복사꽃 지네
지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비가 내리네 이 땅에 닿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추풍낙엽이 지네


저 눈송이
내 발등 위에 앉기 싫어
한번 더 몸을 뒤집고
아서라, 나 또한 여기 이곳이 싫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네


하지만 저 빗방울
애기똥풀 꽃잎에 내리려
얼마나 애타게 공중제비 했던가
그대와 마주치지 않으려
얼마나 먼 길을 나, 돌아서 왔던가



*시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창작과비평








맹인의 아침 - 이원규



산촌 하내리의 겨울밤
자정 넘어 함박눈 내리면
먼저 아는 이 누구일까 제아무리
도둑발로 와도 먼저 듣고 아는 이 누구일까


온 마을 길들이 덮여
문득 봉당 아래 까무러치면
맹인 김씨 홀로 깨어 싸리비를 챙긴다
폭설의 삶일지라도 살아온 만큼의 길 아니던가
밤새 쓸고 또 쓸다보면
맹인 김씨 하얀 입김 따라 열리는 동구밖


비록 먼눈일지언정
깜박이는 눈썹 사이 하내리의 아침이 깃들면
맨 먼저 그 길을 따라
막일 나가는 천씨의 콧노래
등교하는 아이들의 자건거 폐달 밟는 소리


비로소 맹인 김씨는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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