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실연 - 전윤호
가을볕 맞으며 자전거 타는 동안
환한 얼굴로 의암호가 웃는 동안
문득 깨달았네 실연당했다는 걸
사랑하는 사람들 다 어디로 가고
어쩌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혼자 남겨졌을까
밤마다 잠이 마르고
아침이면 까닭 없이 왜 슬픈 건지
이제 알겠네 너무 늦었지만
좁은 길은 새 길로 이어지고
바퀴 위에서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페달을 밟으며 울고 있네
*3인 시집, 슬라브식 연애, 달아실출판사
종점 풍경 - 전윤호
오늘 아침은 안개와 먹었다
커튼 내린 당신 집이 보였다
노루처럼 깡총 강아지가 튀어나오고
한 오십 먹은 새들이 울었다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지나가고
이른 아침이면 무조건 학교로 가던 소년은
세상이 안개라는 걸 몰랐다
지친 사람들은 춘천에서 사라진다
눈 속까지 안개가 들어차고
밤에는 지우개처럼 비가 내린다
이 뒤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시인의 말
1982년 춘천에서 박정대는 강원사대부고 1학년이었고 나는 강원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며 최준은 같은 학교 졸업반이었다. 정선에서 자란 아들들은 좋은 대학 보내려는 부모들의 기대를 받으며 도청 소재지로 와서 학교를 다녔지만 명문대 진학에 도움이 안 되는 시에 눈을 뜨고 있었다. 어쩌면 시를 만나서 구원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공부 안 하고 딴짓한다 생각했다. 군사 정권이 들어선 세상은 사나웠고 학생들도 교련복을 입고 제식 훈련을 받던 시절이었다. 아침이면 길을 막던 안개처럼 모든 게 하반신을 감추고 있었다. 어른들도 잘못 된 세상을 잘못 됐다 말하지 못하던 시절. 춘천은 시골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쳤다. 평생 고치지 못할 고질병처럼.
2017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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