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 조용미

마루안 2018. 12. 28. 18:52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 조용미



명왕성 너머에 있는 먼 곳, 거기서부터 오르트구름이다
그곳까지 햇빛은 어떻게 도달하는가


한낮의 햇빛이 눈이 부시지 않는 기이한 곳 해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을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목성의 바다가 아니다


명왕성에서도 몇 광년을 더 가야 하는 우주의 멀고 먼 공간, 아무도 가보지 못한 태양계의 가장자리,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난 거기서부터 고독을 습득한 것이 틀림없다


먼지와 얼음의 띠에서 최초의 무언가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오르트구름으로부터 여기로 네가 오고 있다
그 둥근 고리에서부터 무언가 생겨났을 테니


명왕성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조금 남았다
어서 천천히 가자 그 다음은 사막이 있는 푸른 별 지구로 가는 일만 남았다 내가 사람이 되었을 때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 민음사








열 개의 태양 - 조용미



침대 밑 가장 구석진 곳에 둥글게 모여 있는
민들레 씨앗 같은 먼지들의
외로움을 생각해본다


열 개의 태양이 기억하고 있는
우주란 어떤 곳일까


내가 감각하는 나는 열 개의 태양이
기억하는 각각의 우주,


감각의 극지는 감각을 기꺼이 닫는
서늘하고 뜨거운 곳


몸이 나의 정신과 한 치의 빈틈없이 꼭 들어맞는 곳


가자, 우주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무성한 기억의 숲으로
몸을 데리고 들어가 보자


별이 내뿜는 빛들을 먼먼 우주의
어느 한 점에서 바라본다는 건


별과 내가 아주 커다란 한집에 산다는 것,
별과 내가 곧 우주라는 것


광역적외선탐사망원경으로 너의 운명을 엿보는 저녁은 없다
250만 광년 떨어진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억이여,
너의 푸른빛들을 내게 오래 들려다오






# 조용미 시인은 1962년 경북 고령 출생으로 1990년<한길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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