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도착하 사회 - 성윤석
나에게 당할 수 있나요.
기꺼이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안 돼요, 안 돼요 하면서도
또 받아줄 수 있나요.
연락을 끊어도
기다릴 수 있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구요.
나의 가족이면 다 아름답고
내 앞에선 현이 긴 악기가 된다구요.
저녁마다
밥을 올리신다구요.
절집마다 다니며 기와를 올리시겠다구요.
내 왼손이 되고 싶다구요.
한 알의 밀알이, 한 촉의 등불이
그러고도 神은 믿지 않는다구요.
우연한 일은 없다니요.
*시집,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문학과지성
조용한 애인 - 성윤석
예술이기도 하고 외설이기도 한
애인과 함께 여행을 간다
가까이 오기도 하고 멀리 가기도
하는 햇빛, 잎 지는 나무들의 사회를
지나가는데도 나는 그대에게 네 외
로운 물기둥을 보여준 날이 잘 생
각나지 않는다 무덤을 없애며 뼈
들을 다독거리며 길은 자꾸 산의
치맛자락 속으로 들어가고 어둑어둑
애인의 마음 앞에 미끈한 버드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선다 그 버드나무
아름답지 않으면 애인이 어찌 나
에게 욕망을 가지랴 내려다보면
가지지 못한 집과 가지지 못한 구름
이 모두 돌이 되었는데 막무가내
애인과 나는 버드나무를 툭, 툭
쳐다보는구나 마음엔 이내 사바
세계의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올라와 뭍고
*자서
지난해는 심마니처럼 길 없는 곳, 아니 길 아닌 곳만 찾아다니고 싶었었다. 지금 또한 여전히 그러한 도정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길을 내는 일, 그런 시간이 내게 온다면 내 유치한 재능도 별반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창밖의 구름떼가 어느새 제자리를 걷어차고 내 어리석은 눈조리개를 비웃고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쩌다 실연 - 전윤호 (0) | 2018.12.28 |
---|---|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 조용미 (0) | 2018.12.28 |
억새, 여름 이후 - 한명희 (0) | 2018.12.27 |
그런 나이 - 정성환 (0) | 2018.12.27 |
너와집 한 채 - 박노해 (0) | 2018.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