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족함은 좌파인 빗소리로 채워진다 - 김명인
입담 센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으나
오른쪽 회로는 처음부터 차단되었으므로
옆자리의 큰 소라라도 왼쪽만 받아놓는다
나의 의견도 절반만 옮기겠다, 내 부족함을 알기에
납덩일 매단 겨울비가 유리창을 들이친다
안팎 없이 들썩거리지만
부리들은 줄기차게 유리의 바깥을 쪼아댈 뿐
방안의 열기까지 적셔놓지 못한다
"전선으로 가는 거지?" 오른쪽에서 누군가 물었다
나는 안 들리는 척한다, 옮길 의도가 없으므로
파장의 중심이라도 잠잠하다, 산맥을 넘고
사막을 건너온 억척스러운 호기심이
정수리에 장대비만 꽂아대지 않는다면
평화란 일상으로 경험하는 누긋한 순환,
허리가 잘려도 두루두루 이어지는 것
나는, 사실 두절되었으므로 딱히 답답할 건 없다
초겨울 우기가 밋밋하다면
내 부족함은 좌파인 빗소리로나 가득 채우겠다
*시집,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문학과지성
우마 - 김명인
네가 몰고 오던 훈풍이, 웃음이
여기 오니 새삼 시절로 읽힌다, 그건 격세라는 거리감
이역만리라 하던가, 거리엔 격자의 창들 우뚝하고
처마마다 풍등 내걸렸으나 꺼질 듯 켜질 듯
형형색색의 불티 속으로 나는 내 가축을 끌고
옛길인 양 지나왔으니
전말로 가린다면 생은 끝내 등정하지 않는 북벽
며칠을 앓고 난 뒤끝이라
미동의 날들조차 물컹한 비린내로 맡아진다
곪고 곪더라도 피고름으로 가름되지 말았으면!
포장을 뜯다가 통째로 덮어버린다
간밤엔 또 수면장애를 겪었다
주먹으로 침대 모서릴 세차게 두드렸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경계 어디쯤의 노숙이여, 살의를 거두느라
나는 늦가을 초본처럼 사지를 늘어뜨렸으니
어느새 저녁이 깊어
골목에서 불 지피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이건 너무 이른 추위야"
무심코 뱉은 말이 회향의 입구라면
나는 진작부터 초심을 꺼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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