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외투를 꺼내며 - 박일환
구겨진 주름들을 보고 있노라니
지난 겨울도 몹시 추웠나 보다
앙상한 몸피를 감싸안고
휘적휘적
찬 바람 이는 거리를 헤매던 기억들이
그닥 낯설지가 않구나
올 겨울은 어느 빙판 어느 길목에서
시린 손을 찔러넣고 기다릴까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위해
한없이 오그라들며
하얀 입김을 뿜어내고 있을까
주름진 세월을 엮어세우는
바람아, 눈물아
다시금 나를 이끌어 다오
내 뒷모습이 점점 작아져
쓸쓸한 겨울 밤하늘에
한 점 별로 박힐 때까지
*시집, 푸른 삼각뿔, 내일을 여는 책
겨울비 - 박일환
첨탑이 젖고 옥상이 젖고 낡은
간판이 젖는다 젖은 얼굴이 또 젖고
더 이상 젖을 곳 없은 어깨들이
처연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가릴 것이 없는 것들은 얼마나 쓸쓸한가
칙칙하게 빗물이 흘리고 있는 등줄기
오랜 세월이 지나면 거기
보기 흉한 얼룩만이 남으리라
기억은 때로 잔인한 것
먹물처럼 파고들어 영영 지워지지 않는
흔적은 이따금 세월을 앞질러 가고
마지막 온기를 잃지 않으려고
희미하게 등불을 켜들기 시작하는
창문, 틈새로 몰려드는
저 차가운 손들
누추하면 누추한 대로 한 생애를 접고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수도 없는
생은
또 얼마나 적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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