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새 - 김종해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새는 언제나 나뭇가지에 내려와 앉는다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하늘 바깥에서 노숙하는 텃새
저물녘 별들은 등불을 내거는데
세상을 등짐지고 앉아 깃털을 터는
텃새 한 마리
눈 날리는 내 꿈길 위로
새 한 마리
기우뚱 날아간다
*시집, 풀, 문학세계사
비우는 것이 순리다 - 김종해
이해준의 춤을 보러
일요일 저녁 동숭동으로 갔는데요
동숭동 대학로가 누구 거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잔칫집보다 환한 불빛을
이해준은 이미 손끝마다 챙기고 있었고
그 위로 이해준의 새가
뜨고 있었습니다
소극장 무대가 잠시 물고 있는 어둠을
등에 한 짐 지고 돌아온 그날 밤
마로니에 공원은 왜 말을 더듬는가
죽은 주성윤 시인이 와서
떠듬떠듬 말해 주었습니다
한때는 대학로가 그의 것이었습니다
내일은 신촌도 비우고
인사동도 비우고
동숭동마저 비워야 할 것을 나는 압니다
*시인의 말
나는 이런 시가 좋다
아침에 짤막한 시 한 줄을 읽었는데, 하루종일 방안에 그 향기가 남아 있는 시.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는 따뜻한 시.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
눈물이나 이슬이 묻어 있는 듯한, 물기 있는 서정시를 나는 좋아한다.
때로는 핍박받는 자의 숨소리, 때로는 칼날 같은 목소리.
노동의 새벽이 들어 있는 시를 나는 좋아한다.
고통스러운 삶의 한철을 지내는 동안 떫은 물 다 빠지고
시인의 마음 안에서 열매처럼 익은 시.
너무 압축되고 함축되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
그래서 엉뚱하고 다양한 의미로 보이기까지 하는 선시(禪詩) 같은 시.
뿌리와 줄기도 각기 다르고, 빛깔과 향기도 다르지만,
최상의 성취를 꽃으로 빚어내는 하느님의 시.
삶의 일상에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세상사의 중심을 시로써만 짚어내는 시인의 시.
시로써 사람을 느끼며,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하고 싶은 시.
울림이 있는 시, 향기 있는 시.
나는 이런 시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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