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간다간다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를 못했던 전시회다. 전시 기간이 짧으면 끝나기 전에 서둘러 가게 되는데 다소 긴 전시회는 이렇게 여유를 부리게 된다. 현대미술관이 멀리 있기도 하지만 바람이 선선해지면 가야지 했던 것도 있다. 나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외진 곳에 미술관을 지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경복궁 옆에 있는 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자주 가는데 반해 과천관은 아주 큰맘을 먹지 않으면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된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도 있거니와 그 영화 촬영을 위한 셋트장이 아니고서야 그 구석진 자리에 미술관을 지어야 했을까.
박이소 전시회는 올해 관람한 전시회 중에 최고라 해도 될 정도로 박이소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거창한 전시회라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감명 또한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법, 전시장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면서 박이소를 깊이 알게 되었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박이소는 20대 중반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데 그 때 본명인 박철호를 버리고 박모(朴某)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그 시절 브루클린에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라는 대안공간을 만들어 뉴욕 미술계에서 소외된 이민자, 소수자의 목소리를 선보인 젊은 리더로 주목 받는 활동가였다.
박이소 하면 떠오르는 그 유명한 솥단지 퍼포먼스도 뉴욕 생활 때다. 14 년의 미국 생활을 마감하고 1995년 귀국해서 박이소라는 예명으로 바꾼 후 그의 이름을 미술판에 확실하게 알리게 된다. 광주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로 선정 되는 등 국내외 미술전시에 참여하였고 각종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의 대표하는 설치 미술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 2004년 47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 10 여년의 짧은 기간에 그가 이룬 업적이 너무 컸기에 그의 이른 죽음이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작품은 생각보다 훨씬 소박하고 단촐하다. 설명을 듣고 작품 앞에 서면 훨씬 감동이 배가 된다.
전시 작품은 <기록과 기억>이라는 제목처럼 박이소의 일생을 이해하는 거의 모든 것이 전시 되었다. 미술 공부를 하면서 부모님께 보낸 편지, 깨알같이 적힌 작업노트와 일지, 재즈를 워낙 좋아해서 그가 수집한 재즈 테입과 직접 부른 노래, 그리고 생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생생한 인터뷰 영상까지 예술가 박이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박이소 전시장에서만 4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돌아와서도 여전히 작품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 아쉽다. 다음 주쯤 한 번 더 가서 미진한 이해와 아쉬움을 달랠 생각이다. 어쨌거나 간만에 좋은 전시를 본 여운이 길게 남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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