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식사법 - 조항록
짜장면 한 그릇 시켜 먹는 법이 없다
양은 도시락 찬밥에
달랑 무김치 두어 개가 전부인 밥상을 차리고
그녀는 등을 보인 채 돌아선다
나이 육십이 넘었지만 부끄러운 새색시처럼
좌판 구석에 그대로 서서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고 숟가락을 움직인다
몇 번이나 얼음이 박혔다 빠진 손가락을 젓가락 삼았다가
전대 한 귀퉁이에 고춧가루를 스윽 닦아내면
구태여 냅킨이 준비되지 않아도 식사는 마무리된다
등을 돌리고 먹는 밥
등허리에 생활을 지고 먹는 밥
차갑게 식은 생계에 매운 살림을 얹어 먹는 짧은 식사
보리차로 입을 헹구고 나면
한 끼만큼 내세가 가까워진다
*시집, 여기 아닌 곳, 푸른사상
몸무게를 재며 - 조항록
체중계의 눈금이 나의 실존일 리 없다
공손한 빈말이 군살을 불리고
여러 풍문이 굳은살을 만들었다
몸속을 떠도는 피는 왜 유언비어 같은 것이냐
가문의 뼈대는 단지 허세가 아니겠느냔 말이다
세상에 무거운 것은 마음이어서
체중계의 눈금이 나의 진심일 리 없다
이까짓 고깃덩어리의 무게에 속아 넘어가지 않아야
교만과 애증이 어찌나 무거운 줄 안다
고단한 나잇살이 붙을수록
나는 오히려 가벼워진다
성장(成長)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지워가는 것
다 지우고 마지막 말줄임표까지 다 지우고 백지가 되면
한 생애가 완성되므로
살과 피와 뼈를 발라내는 자의식이
인간의 문명
한낱 불쏘시개가 되어버린 몸뚱어리와 작별하던 날처엄
아무런 무게도 갖지 않는 신비
발가벗은 육신의 눈금에 덜컥 눈시울이 붉다
여기까지 오려고
상처는 흉터가 된 것이냐
기다림은 전부 흔적이 되어버린 것이냐
마음의 무게가 실은 그것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여하튼 나는 점점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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