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뼈 - 윤의섭
바람결 한가운데서 적요의 염기서열은 재배치된다
어떤 뼈가 박혀 있길래
저리 미친 피리인가
들꽃의 음은 천 갈래로 비산한다
돌의 비명은 꼬리뼈쯤에서 새어 나온다
현수막을 찢으면서는 처음 듣는 母語를 내뱉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음역은 그러니까 눈에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후에는 공중에 뼈를 묻을지라도
후미진 골목에 입을 댄 채 쓰러지더라도
저 각골의 역사에 인간의 사랑이 속해 있다
그러니까 모든 뼈마디가 부서지더라도 가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열은 생각처럼 슬픈 일은 아니다
하루 종일 풍경은 바람의 뼈를 분다
來世에는 언젠가 잠잠해지겠지만
한없이 스산하여 망연하여 그리움이라든지 애달픔이라든지
그런 음계에 이르면 오히려 내 뼈가 깎이고 말겠지만
한 사람의 귓불을 스쳐 오는 소리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음성을 전해 주는 바람 소리
그대와 나 사이에 인간의 말을 웅얼거리며 가로놓인 뼈의 소리
저것은 가장 아픈 악기다
온 몸에 구멍 아닌 구멍이 뚫린 채
떠나가거나 속이 텅 비어야 가득해지는
*시집, 묵시록, 민음사
기적 - 윤의섭
저리 내리는 함박눈이
한때 달빛이었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눈 쌓이는 지붕 아래에서 문득 잠들면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확률은 얼마인가
정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지만 꿈결인 듯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떠오르지 않고
커피숍에 혼자 앉아 있었다는 증언만이 전해졌을 때
소리 없이 가라앉는 저 많은 눈송이를
나 혼자 보고 있다는 확률은 따져 볼 필요조차 없어졌다
지난겨울 북구로 날아간 철새가
오늘 베란다 화분에 새로 핀 꽃잎이라는 걸 안다고 해서
아니면 간밤에 대기권을 살짝 빗겨 갔다는 운석이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고 해서
기적이라고 떠들어 댈 것까진 없다
함박눈이 곧 달빛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불후의 광인이 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함박눈이 창가로 몰린다
적설의 발원지가 이 방이었다는 사실이
아침에 밝혀질 확률은 과연 발굴되기라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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