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通

빌린 박씨 - 이재갑 사진전

마루안 2018. 9. 20. 23:35







*혼혈인에 대한 사진 보고서


이것은 '뿌리(本)를 빌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의 주민등록상 이름은 박근식, 그러나 '피터'라고 더 자주 불렀다. 피터는 1970년 초여름, 서울행 완행열차에서 발견되었다. 수십 알의 수면제를 삼키고 쓰러진 그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정서가 들어 있었다. 혼혈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절규와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 혼혈 청년의 자살기도는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혼혈인'의 존재를 생각케 했다. 전국 신문지면에 박근식이라는 이름이 올랐고 혼혈인 문제도 함께 떠올랐다.


혼혈인의 처우개선을 위한 재단과 교육시설이 만들어지고 일정 교육기간이 지나면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등이 마련되기까지 그 시작점은 '박근식'이라는 한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관습대로라면 성씨(姓氏)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야 했지만 근식은 어머니의 성인 밀양 박씨를 성으로 삼았다. 6. 25 전쟁 직후에 태어난 그에게 아버지는 '미군'이라는 풍문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자신은 '밀양 박씨가 아니라 빌린 박씨'라고 말하곤 했다.  *전시 안내 도록에서 발췌



# 가슴이 먹먹해지는 전시를 봤다. 제목부터가 무언가 뭉클하게 다가오는데 다소 어두운 톤에 담긴 사진 속의 남자의 삶이 가슴 시리게 애틋했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 자기가 선택할 수 없다. 부모도 국적도 날짜도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운명의 결정대로 세상에 나온다.


사진가 이재갑은 오랜 기간 혼혈인의 삶을 사진에 담아온 다큐멘터리 작가다. 단일 민족이라는 기치 아래 유독 혼혈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나라가 한국이다. 내 어릴 적에도 외모가 조금만 달라도 놀림감이 되곤 했다. 가령 코가 유난히 크거나 약간 노란색 머리카락이어도 양키라거나 튀기라고 놀렸다.


놀림 당하는 사람이 모욕감에 울음을 터뜨려야만 그 놀림이 멈췄다. 혼혈인이 아닌데도 외모가 약간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놀림을 받는데 진짜 혼혈인이 겪었을 냉대와 차별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금이야 다문화 가정이 많아 조금 덜하지만 당시는 혼혈인이 감춰야할 사람들로 치부했다. 정부에서 이걸 부끄러운 현상으로 치부했으니 사회에서는 오죽했겠는가. 혼혈인은 물론이고 그 어머니까지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혼혈인들이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미국으로 떠났지만 떠나지 못한 혼혈인도 있었다. 그 중 하나였던 이 사진전의 주인공인 빌린 박씨는 몇 년 전에 한많은 이승을 떠났다. 한때는 자학을 했고 이후는 치열하게 살고자 했으며 혼혈인의 인권과 처우개선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삶이었다.


이재갑의 사진이 값진 것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값진 작업 중의 하나가 바로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사진들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이 땅을 잠시 빌려 살다가 죽는다. 어머니의 배를 빌려 세상에 나왔고 자연이 빌려준 먹이를 먹다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죽은 몸 또한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기에 세상 만물은 서로 빌리고 빌려주면서 순환하는 것이다. 빌린 박씨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사진 앞에서 오랫 동안 떠나지 못한 이유를 빌린 박씨가 가르쳐 주었다. 이재갑 사진가의 치열한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