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맛의 배신 - 유진규

마루안 2018. 9. 12. 20:08

 

 

 

이 책을 통해 진짜 맛에 대한 배신을 제대로 알았다. 내가 먹은 음식이 모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심코 먹는 음식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오늘은 한 끼 정도 가볍게 먹고 이 책에 집중해 볼 일이다.

바나나 우유에는 바나나가 몇 개쯤 들어 갔을까. 딸기 우유에는 딸기가 몇 개쯤 들었는가. 100% 오렌지 주스 한 잔에는 오렌지가 두 개쯤은 들어갔겠지. 결과는 아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 없다. 모두 인공적으로 만든 가짜 향으로 맛을 낸다.

이쯤 되면 음식의 배신이라 해도 되겠으나 우리는 매일 수십 가지의 인공향을 입으로 넣고 있다. 저자는 SBS, EBS 등에서 활약한 환경 다큐 전문 PD였다. 중년이 되면서 배가 나오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식탐을 억제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먹는 자신을 발견했다.

저자는 자신을 실험 도구로 활용하기로 했다. 왜 과식을 한 뒤에도 알 수 없는 헛헛함에 주전부리에 손이 가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임을 알면서도 정크푸드를 끊을 수 없는가. 저자는 끝없이 늘어나는 식탐으로 인해 맛에 대한 여러 실험에 돌입하게 된다.

무과당 식단 실험을 비롯해 자신의 몸을 실험 도구 삼아 온갖 다이어트와 건강식에 대한 실험을 시행한 5년의 기록을 담은 책이 바로 <맛의 배신>이다. 그래선지 어렴풋이 듣기만 했던 내용들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저자의 글솜씨도 술술 읽히는데 한몫을 하는데 아주 명료한 문장이 이해력을 돕는다.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작금의 현실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기가 점점 어렵다. 온갖 현란한 광고와 무지막지한 광고 세례에서 옥석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책은 광고 효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독자가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입수하냐에 달렸다. 책도 식품과 마찬가지로 영양가 있는 책은 독자가 발견한다. 식품 정보도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넘쳐난다. 문제는 그것이 제대로 된 정보냐다.

물만 먹고 살지 않은 이상 시중에 나오는 가공 식품을 전혀 안 먹고는 살 수 없다. 무공해 자연식도 돈이 있어야 한다. 채식주의자 식단이 훨씬 돈이 많이 드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과일, 채소가 요즘처럼 천정부지로 뛰고 있을 때는 자연식이 더욱 난감하다.

철저하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나는 생수와 우유를 빼고는 시중의 음료를 가능한 마시지 않는다. 기껏 해야 이따금 캔커피 정도다. 콜라나 주스를 마셔본 지는 몇 년이 되었다. 처음만 어색하지 습관이 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공 식품을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기에 적당히 채소와 결합된 식단으로 소식을 한다. 언젠가부터 저녁을 가벼운 소식으로 바꾸자 속이 편하고 정신도 맑다. 나도 사람이라 식탐을 억제하기가 힘든데 그럴 때마다 굶주리는 아프리카를 떠올린다.

달고 짠 음식에 맛을 들이면 좀처럼 벗어나기가 힘들다. 저자는 맛의 희석화란 장에서 닭고기가 정크푸드가 된 이유를 설명한다. 공장식으로 길러낸 닭고기는 당연히 맛이 떨어지고 그러니 고기에 온갖 양념으로 범벅을 해야 소비자가 찾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농산물 속에 미량영양소가 줄고 있다는 언급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식 하우스 농원에서 온갖 비료와 농약으로 기른 농산물은 모양과 빛깔만 좋지 맛이나 영양소가 떨어진다는 거다. 이런 밍밍한 재료의 맛을 감추기 위해서 요리할 때 설탕과 소금과 고춧가루를 많이 쓸 수밖에 없다.

흔히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또 음식 제조 과정을 알면 먹을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거짓말이다. 소중한 내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아는 게 약이다. 또한 맛의 배신에 속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