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덤에 오른다 - 김창균
가장 전망 좋은 집은
가장 멸망하기 좋은 집.
한여름 선사시대 돌무덤에 올라
아내와 자식들 기다리다 슬쩍 먼저
그 옛적 사람의 죽음 속을 들여다본다.
얼마 되지 않는 무덤 속 그 짧은 거리가 캄캄해
몸 하나 둘 곳 없이 아득하고
개중 평평한 돌을 골라 앉아 담배를 피우며
이 속에 묻힌 한 어른의 생애를 생각도 해본다.
가슴에 돌을 무수히 얹고도
가라앉지 않는 죽음이여
늦게 도착한 어린 자식은 돌무덤에 걸려 넘어져
피 흥건한 무릎을 끌어안고 우는데
그 무르팍 피를 닦아주며
나는 또 모른 척
사냥 나간 가장 기다리듯
숨 가쁘게 언덕을 올라오는 아내를 기다린다.
*시집, 먼 북쪽, 세계사
성황당 길 - 김창균
내가 거기까지 가는 길은 외길이어서
손가락으로 튕기면 훅 날아갈 것 같다.
한낮에도 어두워 숲을 헤치고 가야 하는 길
마을 귀신처럼 온몸에 진드기 풀이 붙는 길
들큰한 뱀딸기를 따 먹으며 그 길을 가면
다 식은 시루떡을 자꾸 건네던
내 할머니가 있다. 쇳소리를 내며
치성을 드리던 그 할머니와
초경한 속곳을 태우며 울던 그녀의
손주딸이 있다. 내 누이가 있다.
연초에 장손 토정비결을 보며
황급히 덮었다 조심스럽게 다시 펼치던
그 할아버지도 땅땅 장죽을 때리며 나와 있다.
"먼 데서 나무가 운다" "먼 데서 나무가 운다"
몇 번을 되뇌이며 긴 부적을 쓰던 그가
자주 경기를 하던 손주와 같이 거기 있다.
아버지 눈을 피해 긴 머리를 잘라 태우며
작두 타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던 엄마도
휘어진 숟가락으로 대문에 빗장을 지르고
그 한길 위에서 식은 시루떡을 먹으며 캄캄하게 서 있다.
모든 길은 외길이어서
손가락에 힘주어 튕기면 흐흑 하고
길게 울어버릴 것만 같다
# 김창균 시인은 1966년 강원도 평창 진부 출생으로 강원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먼 북쪽>,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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