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잠들면 다 꿈이고 - 박이화

마루안 2018. 7. 5. 22:09



잠들면 다 꿈이고 - 박이화



담장 밖을 넘나드는 넝쿨 때문에
울안에 심지 말라는 능소화가
가슴에 커다란 주홍글씨를 달고서는
해마다 아프게 꽃을 피우고 있다


지을 수 없는 낙인처럼
저 주홍의 꽃가루에 눈멀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지만
그렇게 눈멀어서인지
사랑에 눈멀어서인지
날벌레 한 마리 그 속에 파르르 졸고 있다


잠들면 다 꿈이고
꿈은 언젠간 깨는 것이어서
누구라도 맹목의 사랑 앞에선 꿈꾸듯 눈이 머는지
깨어나기 전까지
저 하루살이도 꿈에선 꽃일 터


그러나 꿈은 길어도 하룻밤
그 바람 앞의 단잠 깨우지 않으려
꽃도 향도 모르는 척 담장 밖을 서성이는데


누구
꿈과 사랑의 차이를 아시는지
꿈은 꿈인 줄 모른 채 울다 깨어나도
사랑은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날수 없는



*시집, 흐드러지다, 천년의시작








春畵 - 박이화



이 놈 저 놈
온갖 사내의 손을 타면 탈수록
빤들거리는 폼세가 영락없는 화류계 체질이다
그 목단 같은 계집을
한 손아귀 휘어잡고 벌겋게 밤을 새는 기분이란?
살아보니 온갖 장소에서
온갖 체위로 즐기기엔
하늘 아래 이만한 것이 없다
더구나 끗발 한 번 발기탱천하는 날
일타삼피 그 절묘한 타이밍은
방중술에 절륜한 년 놈의
속궁합에 비할 바가 아니다
허나, 방사는 금물이라
꼴리는 대로 생을 사정하지 마라
계집도 노름판도 초장 끗발 개 끗발
모르지 않을 터!



*시집, 그리운 연어, 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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