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미 오고 끝났는지 - 황학주

마루안 2018. 7. 4. 20:21



이미 오고 끝났는지 - 황학주



이미 오고 끝났는지 이 비
하나씩 우산 접은 사람들을 집집에 돌리고,
우리를 가른 것이 나라고 해도
곧이듣지 않을 사람들은
3리로 1리로 흩어져 가고 있는 동안
지울 수 없는 당신의 바라보던 눈물,


그 많던 바람 억센 이 마을에서
서서히 급해지던 사생활과
금방금방 속이고 돌아가던 세월
머금다 배앝은 세 개 네 개의 배반 사실
비에 젖은 외박과 굴욕적인 출퇴근.


고기를 잡으며 사진을 찍던 신혼의 자리는 어디인가.
멀리 있어도 뜨건 눈 앞에서 타는데
멀리서 살지도 못할걸
갈라져서 우리는
어두운 자리 목메이는 주소에서
들은 이야기하고 눈빛만 떠올려야 한다.
함께 몸부림하던 몸이 있는 동안은.


피난 깡통을 찬 측은한 내 정신 앞으로
어깨를 펴고 다리를 붙여 힘있게 걸으라는 것이
아침 당부였던 당신,
삼십 나이 주머니 안에
무서운 빚덩어리를 넣은 나를
흘러내리고 기이와서라도 으스러져라 껴안기를
꼭 갈망한 까닭이야 사랑뿐이었던 것.


지금 장갑처럼 참회를 꼭 끼고 여관 창에서 보니
어려움이 헐리면 같이 차분하게 걷게 되리라던
서울 구락부 가는 촌길 풍경 그대로 보이고,
천하디천한 인연을 만나 의로운 사랑을 한
당신을 어디서 보아야 할지 나는 모르고 있다.



*시집, 사람, 청하출판사








떠돌이여 - 황학주



열 일곱에 떠내려가 사라지는 집을
포플러 한 그루에 붙어 울며 보았다.
그 비극 한 평의 끄트머리 끄트머리가
이렇게 너른 줄 모르고
떠돌이, 두루루 회전하는 바퀴 같은 피를 집어넣고
막지 못한 말문처럼 자취 길게 비져 나와서
눈물도 그만 오픈 세트처럼 집처럼
광대뼈 끝에서 쉬이 무너뜨리고 있다.


신촌리 나이 들고 병 있는 말이 얼마나 슬픈지
아랑곳없이 가루눈 마굿간에 오고 추워지는
날.
지나갈 땐
뉜들 욕심을 작게 하지 않을까만
가랑잎처럼 얇고 마른 혀를 입 안에 머금고
나는 너무 오래 지나가는구나.


술잔에 내가 몇 마디 띄워 보는 잔잔한 주막
실내 스포츠 중계가 뛰어들어온 벌레들처럼 술상을 돌고
헛소리하며 오는 철인(哲人) 하나도 못 만난
떠돌이, 먼 길일수록 노을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크고 고왔다만


소총 가늠쇠 같은 미간에
갈 길은 다시 희끗희끗 영(嶺) 속을 돌고
코 끝 위의 월유봉에선 젖은 돌이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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