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연화리 바닷가 바람봉분 - 서규정

마루안 2018. 6. 30. 22:13

 

 

연화리 바닷가 바람봉분 - 서규정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정면이 아닌 옆쪽에서 훔쳐보아야 한다
마주 보아도 손 내밀 생각이 전혀 없는 무덤을 끼고 돌면
잔잔한 바다에 고추잠자리 날고
멍청하리만치 푸르고 푸르른 하늘도 살아있는 봉분 같아선,
이빨 다 빠진 늙은이 어금니 아플 까닭 없듯이
씹고 또 뱉어야 할 그 무엇이 남아
느릿느릿 이 바닷가를 거니는 것이냐
한 숨은 내 쉬고 또 한 숨 들이켜는 이 풋풋한 폐활량
오늘은 저 무덤과의 거리가 먹먹하리만치 아픈 걸 보니
육신도 바람의 궁전만 같다
옆으로 옆으로 가자, 이번에 받은 生 실수로 왔다 실수로 가더라도
우리가 게처럼 느리게 다녀가야만 했던 소풍의 이유이다


*시집, 참 잘 익은 무릎, 신생

 

 

 

 

 

 

소풍 - 서규정

 

 

오래된 사진 한 장 속엔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간다

저 날이 언제였더라, 최루가스에 코를 막고 눈을 비비며

돌멩이 두어 개 집어 던지고 냅다 도망치며

데모대로 잡히면 우린 백골단에게 뼈도 못 추린다

연꽃의 국적은 대체 어디다냐

연꽃방죽께로 햇빛 따라 들어가다 찰칵

바람 따라 나오다 찰칵

손가락을 V자로 펴고 김-치나 치-즈

아직까지도 생긋생긋 웃으며

 

이렇게 오래오래 불타는 복역

사진은 절대로 추억을 찍지 않아, 미래를 미리 판에 박아놓듯

 

찔레꽃이 포위한 언덕에 방 하나, 나는 도시빈민으로 뛰고

지금 어느 동쪽 보험외판원으로 떠돈다는 너

사람은 등이 문이었을까

어깨동무처럼 서로의 등을 토닥여 주던

너와 찍은 사진 한 장 다시 보는데 반백을 훌 넘겼다면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할 각개전투가, 우리에겐 소풍이었다

 

 

 

 

*시인의 말

 

패배도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