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집으로 가는 길 - 김요아킴

마루안 2018. 6. 17. 21:30



집으로 가는 길 - 김요아킴



퇴근길을 서성이는 잔바람이

바르르 내 왼손의 까만 봉지를 흔든다

불어터질 듯 오뎅 한 점

피어나는 김처럼 훔쳐내고는

분필가루 삼키며 웬종일 쥐어 짜낸

별 즐겁지 않은 노동을 생각해 보다

그래도 몇몇 녀석들 웃음을 떠올리며

현관문 열면 있어야 할 내 식구들을 위해

막 말아올린 김밥 두 줄 건네받는다


그 봉지 속 비디오 테잎, 연신

오늘밤 같이 보낼 것을 요구하며

어서 가자 떼를 쓰고

내일을 기약하며, 남은 종지의 국물

깨끗이 비워버린다

삽심 촉 백열등 아래

꺼지지 않고 서 있는 내 그림자

여전히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이 작은 뜨거움 때문일까


산다는 건 지독히 행복하다



*시집, 어느 詩낭송, 푸른별출판사








그 왼쪽, 골목길 - 김요아킴



나 어릴 적 곧잘 다니던 골목길

여고 담벼락을 위태롭게 끼고

맞은편 동네어른들의 옆구리 두어 번을 건드려야

어디메쯤 두 갈래로 나타나는 그 골목길

가끔씩 그믐달이 차올라

멀건 보안등마저 어둠에 떨던 날엔

왼쪽으로 난 그 길,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지

먼지 자욱한 소문들이 단지

애기 무덤 주변만을 떠돌 뿐이라고

거미줄 낮게 낡은 흉가 정도 매달려 있을 뿐이라며

곧장 가면 환한 큰 길 재빨리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열 살 난 걸음으로 달래곤 했지만

늘 발목은 이미 반대편 길을 더위잡고

쫓아오던 개 짖는 소리도 사라지고

점점이 반짝이는 불빛

밤 오래 궁시렁거리는 방앗간 소리에, 겨우

마음을 내리며 매번 돌아가고 말았지


아직도 가지 못한 그 길

꿈속 신화가 되어

지금도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지






# 김요아킴 시인은 1969년 경남 마산 출생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03년 계간 <시의나라>와 2010년 계간 <문학청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가야산 호랑이>, <어느 시낭송>, <왼손잡이 투수>, <행복한 목욕탕>, <그녀의 시모노세끼항>이 있다. 이름이 다소 특이한데 본명은 김재홍이다. 현재 부산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