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저, 낙타 - 김수우

마루안 2018. 6. 16. 21:16

 

 

저, 낙타 - 김수우


내내 마른 목젖으로
신기루를 걸어
닿고 싶은 데 어디일까 저 낙타는
보지 못한 초원을 그리워하는 법이 아니라고
제 마음에 미리 말해 두었는지
빈 하늘 첩첩 껴안고 넘는 모래 언덕
그 몸 안에 침묵의 사원을 지었다
사원의 뒤뜰에서 발효되고 있는 이름
어떤 바람으로 피어나려는 걸까
멀리 사람들이 서성인다

평생을 걸어도
마지막 무릎을 꿇을 곳, 결국
사막 한가운데임을 되뇌는 걸까
자유란 모랫길만큼 지루한 지평이라고
제 마음에 미리 말해 두었는지
그 몸밖에 잿빛 봉우리 하나 일어선다
콧잔등에 묻은 노을을
긴 속눈썹으로 걷어올리는 저 낙타
눈망울에 잠긴 저녁 하늘이 깊다
곧 별이, 풀 씨 같은 별이 뜨리라

 

 

*시집,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시와시학사

 

 

 

 

 

 

천장(天葬) - 김수우


가끔 잡아먹은 산양에게 미안해서
평생 뜯어먹은 풀들한테도 빚이 많아
죽어선 고기가 된다
살점 쭉쭉 찢기며 한 입 양식이 되는
늘 조심스럽던 가슴 벽

뼈와 살 한 점 땅에 구르지 않기를
기도하던 아들
천장사(天葬師)가 건네는 무릎 뼈 한 조각 품고 돌아서면
땅바닥에 풀어놓은 마음을 들고
하늘 가득 날아오르는 어머니

살면서 서툴렀던 사랑,
죽어 새들에게 다 먹히고 나서야
완성되는 목숨이라는 집
땅으로 흐르는 하늘은 팔이 길고
하늘로 흐르는 땅은 날개가 크다


*천장(天葬): 티벳의 고유한 장례 의식. 그들은 이승에서 마지막까지 새들에게 육신을 완전히 보시하고, 다음 생을 준비한다. 못된 사람의 살과 뼈는 새들이 먹지 않는다고 그들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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