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산다는 것은 모두 닮은꼴이다 - 정충화

마루안 2018. 6. 12. 21:39

 

 

산다는 것은 모두 닮은꼴이다 - 정충화


여덟혹먼지거미란 놈은
제가 놓은 덫에 걸린 곤충을 잡아먹고
그 주검으로 은신처를 꾸민다
내용물을 빨아먹고 난 껍데기
그 빈집들로 가짜 나뭇잎을 엮고선
새로운 먹이를 유혹한다
요샛말로 재활용 사냥법인 셈이다
둥근 그물망 속에
비밀의 방을 들이고 그 안에 숨어
삶을 직조하는
처절한 투쟁을 반복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찍어 누르고
자신의 가치를 뽐내고자
온갖 치장을 하고 사는 우리네 삶도
결국 삶을 위한 투쟁
여덟혹먼지거미가 사는 방식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산다는 것은
그렇게 닮은꼴인 것을


*시집, 누군가의 배후, 문학의전당

 

 

 

 

 


발베개 ―정충화


종각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보았다
잠에서 깨지 않은 어느 노숙자의 한쪽 다리가
천장을 향해 들려 있는 것을
치켜진 무릎 끝이 뭉툭 잘려 있는 것을

잘린 무릎의 드러난 살갗으로
햇살에 비친 유빙(遊氷)처럼 푸른
빛이 내려앉아
그를 깨우고 있었다

사라진 발은
운동화도 벗지 않은 채
그의 머리 밑에 베개로 괴어져 있었다
깊이 팬 주름 고랑마다
노숙의 이력이 겹쌓인 얼굴 아래서
베개가 되어 함께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낮 동안 그의 몸을 떠받치던 발이
밤이면 다리를 빠져나와
고단한 잠을 베어주었던 것이다


 


*시인의 말

이 별에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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