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다 버린 가구 - 박구경

마루안 2018. 6. 12. 19:31

 

 

내다 버린 가구 - 박구경


비둘기가 도로 한복판에 누웠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좀 해졌더니
다음 날 만겁의 먼지라 몇몇의 깃만 날리고 있었다

가구도 비둘기와 같아서 버림받고 죽어간다

며느리가 밥이슬 속 시엄니 몰래 내다 버린 가구도
춥고 떨리고 무서운 밤을 지나
햇볕과 바람과 덜그럭거리며
벽 짚고 삐걱거리고 휘청거리다가
무릎을 팍 꿇고 주저앉는다

모든 물질로부터 몇 개의 깃으로 흩어지는
내다 버려진 가구 같은 사랑

퍼머머리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아, 못나게도 두 번째 서랍이 슬프다


*시집, 국수를 닮은 이야기, 애지

 

 

 



응시 - 박구경


치매에서 깨어 오똑 일어나 앉으니
마을 건너엔 꽃 한 송이

무얼 그리느라 환하고도 밝은 꽃

유리잔 가득 막걸리를 부어
붕어처럼 소리 없이 웃어요 엄마,

엄마는 두 살 박이 우리 아기

지금은 나

낡은 괘종시계가 마루에 걸린
마루 속의 낡은 괘종시계와 마주 앉아


 


# 박구경 시인은 1956년 경남 산청 출생으로 10.26 당시 경남일보 기자로 근무하던 중 해직되었다. 1996년 <경남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진료소가 있는 풍경>,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국수를 닮은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