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연에 관하여 - 박수서

마루안 2018. 6. 4. 19:59



인연에 관하여 - 박수서



그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왼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슨 자기력처럼 오른손이 끌려나갔다
왼손과 오른손의 결합, 맥을 집듯 조심스럽다
속살과 속살이 부둥켜 흔들려야 하지만,
등껍질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물갈퀴질을 하듯 손이 흔들렸다
계속해서 딸꾹질을 하는 어린 손이 흐드러지며
뚝 떨어지는 순간, 수십 수백 개의 손들이
길을 잃고 숲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가 놀라서 눈물을 찔끔 흘렸을 만큼
먹이를 나르는 개미떼처럼 찾아온 손들이
그와 나를 거미줄처럼 엉켜 놓았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가시처럼 따갑게 넝쿨을 쳤고
밤송이만한 꽃들이 피어났다.



*시집, <흑백필름 속에서, 울고 있다>, 초록배매직스








음악사 앞을 지나다 - 박수서



아름다운 여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걷는 것처럼 좋은 일도 없다. 오늘 음악사 앞을 지나다 사춘기를 막 시작한 소년의 가슴으로, 펌프질하듯 넘치는 흰 노래들을 새로 이식할 장기처럼 낯설게 계란 바구니에 넣다 바닥에 흘려버렸다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는 노래들. 수음을 시작했을 때쯤 담 너머로 보았던 세상에 대한 이상한 호기심과 함께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노래. 딱 한 번 사랑한 여자를 닮은 노래.


나는 붙잡을 수 없었다 상처의 추억으로 두껍게 딱지 앉은 노래는 노른자처럼 익으면 익을수록 목이 매어왔고 바닥 위로 기름처럼 떠다니다 내 쪽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보았다 바닥 위 기름방울들이 오밀조밀 모여드는 것을 순간 비가 쏟아지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생겼다.





# 오래 전에 스쳐 지나갔던 시들이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시를 읽는 것도 인연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세상 만물이 나와 관계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특히 인연이란 끈은 묘하다. 그 경계를 맴돌다 내가 당기면 인연이요 밀면 인연이 아니다. 사족 또한 인연이 있어야 하는 것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