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미자의 오십견 - 박철

마루안 2018. 6. 3. 20:04



미자의 오십견 - 박철



통증으로 견딜 수 없는 어깨의
팔을 휘저어 돌리다보면
어떤 생소한 날의 오르가슴이 느껴진다
어차피 사내도 없는 마당에--
그렇게 체념한 시대처럼 양껏 팔을 저어
거문고 힘줄이나 끊어내다보면
비명도 사람의 것이라
여백의 꽉 찬 소리 멋들어지게 들려온다


단 한번도 깨어 있지 못했던 강인한 불면
오늘은 빼앗긴 잠을 자야겠다
삶이란 무엇인가
단호한 그 물음에 통증으로 답할 수 없었으나
잊은 듯 일어설 수도 없던 염좌


지난밤엔 시간의 통증을 빌려다가
당신에게 가는 마음 잠깐이었는데
이유를 대자니 새벽별이 보인다



*시집,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창비








반 - 박철



반은 가운데인가요 천의 얼굴인가요 당신인지요
반에 관한 두가지 아픔이 있다
어머니 김포 들판 끝에서 피사리할 때
하늘이 뒤집히며 장대비 검게 쏟아져내릴 때
나는 물주전자 들고 들판의 반에 서 있었다
마을로 돌아가야 하나 내처 나가야 하나
달려가 엄마를 부르니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던 어머니는
젖은 등짝을 치며 왜 왔느냐 탄식을 했다
조금 더 커 한강에서 멱 감을 때
형들 따라 강의 가운데까지 가서 덜컥 겁이 나는 거라
그때 돌아올 힘으로 내처 강을 건넜어야 했다


한번은 반을 지나쳐버렸고
한번은 반을 돌아와
겁 많은 내 생은 그대로 솟대가 되고 말았다
오늘 개화리 자귀숲으로 가는 길
이제 기어이 발길은 다시 반에 다다랐으니
반은 절벽인가요 바람인가요
당신인지요